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TView
[최지은의 TVIEW] 결국은 드라마지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이 복잡한 룰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이유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

예쁘다고 말하기 좀 어려울 땐 귀엽다고 하듯, ‘웰 메이드’가 아닌 것에 대해 매력있다고 말하게 될 때가 있다. 빈말은 아니다. 다만 매력이란 너무나 개인적인 기준이어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내가 TV프로그램에서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 중 하나는 ‘남들이 안 하는 짓을 하는’ 경우다. 지상파는 물론 수많은 케이블 채널에 종편까지 더해지며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시청률이 존망의 제1 기준이 되는 정글에서 아이돌이면 아이돌, 시월드면 시월드 등 이미 히트한 아이템을 뒤따라가지 않고 뭔가 희한한 걸 해보려는 프로그램에는 좀더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승부를 싫어해 가위바위보도 귀찮아하고 간식내기 사다리타기를 하느니 미리 돈을 내고 마는 게 편한 성격임에도 tvN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더 지니어스…>)을 보게 된 건 출연자들의 흥미로운 면면 때문이었다. 항상 심드렁하고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프로그램의 색깔만큼은 확실하게 만드는 김구라, 철들지 않은 중년 허세의 아이콘이자 파란만장한 룰라 역사의 산증인 이상민, 드라마 <올인>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프로겜블러 차민수, 그리고 이 범상치 않은 형님들 사이에 던져진 꽃다운 청년은 인피니트의 성규라니. 물론 열세명 출연자의 캐스팅 중에서도 신의 한수는 e-스포츠계에서 ‘최고의 2인자’라는 아이러니한 호칭으로 불려온 홍진호였다.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거나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던 만큼 자부심과 승부욕도 강할 법한 이들이 하나의 게임판에 뛰어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메인매치는 데스매치 진출자를 결정하는 게임이며 데스매치는 최종 탈락자를 결정하는 1:1 게임이다. 메인매치 우승자에게는 데스매치를 면제해주고, 단독 우승자의 경우 다른 한명에게 데스매치를 면제해줄 수 있으며 탈락 후보는 자신과 데스매치를 겨룰 한명을 지정한다”는 기본 룰에서부터 머리가 멍해졌다. 숫자 카드를 이용한 123게임은 알 것 같으면서도 승수를 계산하는 출연자들과 편집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일본 만화 <도박 묵시록 카이지>나 <라이어 게임>에서도 유사한 게임과 구도가 등장했었지만 <더 지니어스…>는 예능프로그램인 동시에 수리탐구영역Ⅰ 동영상 강의를 보는 수준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대선 게임’과 ‘좀비 게임’을 필기하며 보다가 결국 5회전 ‘사기경마’의 룰 설명을 들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내 머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도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게임을 포기했어도 <더 지니어스…>를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사채 빚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원래 친한 사이가 아닌 만큼 우정이나 사랑에 금이 가는 것도 아니다 보니 절박함이 주는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회차가 쌓일수록 조금씩 생겨나는 친분과 신뢰는 출연자들을 갈등하게 만든다. 방송 분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붙임성과 눈치도 중요하거니와, 둘이 있을 땐 ‘믿는다’며 손을 잡았다가 인터뷰 카메라 앞에 혼자 서면 서로 다른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머리싸움도 필요하다. 차민수를 중심으로 한 연합이 ‘풍요의 땅, 기근의 땅’ 게임에서 우승자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데스매치에서 결국 그가 희생될 때 우승자 김경란이 보인 눈물은 기대하지 않았던 드라마의 순간이었다. 그러니 <더 지니어스…>의 성패를 평가하는 대신 말하자면 이 게임, 매력있다.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의 다크호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제가 승이 많으면 이기죠”같이 하나마나한 소리, 혹은 “이게 무슨 말이에요?”처럼 룰을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통해 산전수전 다 겪은 형님들과 노련한 누님들을 방심시켰던 성규. 하지만 놀라운 생존 능력으로 여유롭게 살아남고 ‘전략 윷놀이’에서 차민수를 잡은 성규의 필승 전략은 <더 지니어스…>에 대한 가장 정확한 분석이다. “어떤 게임이든 라인이에요. 승수가 있는 쪽의 라인을 타야죠.”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