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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2002-02-06

비디오/메인과단신

Earth vs the Spider 2001년, 감독 스콧 질 출연 댄 애크로이드, 데본 거머설 장르 공포 (콜럼비아)

M. 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에는 필사적으로 ‘슈퍼 히어로’를 찾아다니는 인물이 나온다.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서 조금만 부딪혀도 골절되던 그는, 자신의 극단에 있는 ‘언브레이커블’을 찾기로 한다. 그를 찾으면 ‘극단적으로 약한’ 자신의 존재이유도 찾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와 달리 이도 저도 아닌 보통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 슈퍼 히어로가 되기를 원한다. 일상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만나거나 극복하기 힘든 고난을 당했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초월한 영웅이 되기를 원한다.

1958년에 만들어진 를 리메이크한 <거미>는, 거대한 거미와의 싸움을 그린 원작과는 달리 만화책의 영웅을 꿈꾸는 청년의 비극을 그린다. 유전공학연구소에서 경비로 일하는 청년 켄틴은 아파트 옆방에 사는 스테파니를 짝사랑한다. 그러나 불량배들이 스테파니를 괴롭혀도 켄틴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수줍고 허약한 켄틴의 유일한 즐거움은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들이 등장하는 만화책. 어느날 연구소에 괴한들이 침입하고 켄틴의 동료가 죽어가지만, 그는 무서워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켄틴은 연구소에서 실험중이던 거미의 체액을 자신의 팔에 주사한다. 그리고 소원대로 슈퍼 히어로가 된다. 스테파니를 괴롭히던 불량배들도 혼내주고, 도시를 공포에 몰아넣던 연쇄살인범도 죽여버린다. 그러나 슈퍼 히어로에게는 늘 가혹한 대가가 뒤따르는 법이다.

<거미>를 한 문장으로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출발은 <스파이더맨>, 결말은 <플라이>’다. <거미>의 켄틴은 보통 ‘슈퍼 히어로’물의 주인공과는 약간 다르다. 헐크나 스파이더맨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초인은 우연한 사고로 능력을 갖게 된다. 배트맨은 부모의 죽음 때문에 복수의 칼날을 갈며 스스로 초인으로 성장해간다(배트맨에게는 초월적인 능력이 없다). <플라이>도 공간이동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파리의 유전자가 끼어들어온 결과다. 그러나 켄틴은 다르다. 자신의 비루함을 증오한 켄틴은 스스로 초인이 되는 방법을 택한다. 스스로 갈망한 소원이었고, 그의 의지가 담긴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 영웅이 되었고, 결국 괴물로 변해간다. 성공을 맛본 많은 인간들이 흔히 걸어가는, 바로 그 길로.

TV용으로 만들어진 <거미>에는 호쾌한 액션이나 거창한 특수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작자로도 참여한 스탠 윈스턴의 솜씨인 ‘거미인간’의 형상이 볼 만한 정도다. 그러나 거미인간으로 변해가는 켄틴의 일그러진 얼굴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그의 마음까지 보고 있으면, 조금 가슴이 아프다. 수작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는 영화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