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시나리오작가들은 좀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
소설은 내면적 묘사로 끌고 갈 수 있지만 시나리오는 외면 묘사, 즉 행동으로 대부분을 표현해야 한다. 소설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주인공으로도 한권의 책을 쓸 수 있다. 그의 생각과 내면의 폭풍을 묘사하면서 말이다. 하나 시나리오는 불가능하다. 그런 영화를 볼 관객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은 심지어 작가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척, 작가는 자신의 사상과 관념을 풀어내어 일종의 수필을 쓰면서 부족한 서사를 메운다. 신묘한 글재주가 있기에 빠져들지만 이야기 자체는 아니다. 그래서 많은 소설들(특히 한국 소설들)은 발단만 있고, 중간 과정이 없이 바로 클라이맥스로 간다. 중간 과정의 ‘분량’은 있으나 드라마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할 때 가장 힘든 점이다. 보통 3장 구조의 이야기에서 2장이 가장 쓰기 힘들다.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주고받으며 긴장과 힘을 비축해 3장으로 치달아 오르는 것 없이는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지만 이것을 쓰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내면 묘사(대부분의 경우 작가의 생각)를 통해 행동에 동기부여를 하고 정당화시킬 수 있지만 불행히도 시나리오는 그럴 수 없다. 내레이션과 장광설이 아닌 행동(액션)으로 보여줘야 한다. ‘도무지 저놈의 생각을 모르겠어’란 관객의 불만이 나오면 안된다. 그런데 막상 각색을 하려면 이 부분이 원작에서 대충 넘어갔으니 난감한 일이다. 새로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각색하기 편한 소설은 3인칭 객관적 시점의 건조한 소설들이다. 하드보일드 소설이나 장르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형식인데, 이 계열의 주인공들은 철학적이거나 고민만 하기보다는 움직이고 실천한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기 쉽다. 할리우드가 발전한 것은 바로 이런 소설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생각이 많으신 소설가들이 주류로 대접받는 이곳은, 그래서 나를 비롯한 시나리오작가와 감독들이 고생하고 있다. 물론 소설은 나름의 길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난 뒤의 쌉싸름한 감정을 영화가 흉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예술로서의 소설만이 아닌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중심의 소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차차 생각해볼 문제지만, 결국 그래서 한국 영화계는 시나리오작가들에게 대접을 잘해줘야 한다. 작가료도 듬뿍 주지 않으면 안된다. 참, <설국열차>는 위 소설 <설국>을 원작으로 한 게 아니다. 봉준호 감독이 부탁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