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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다

칸에서 만난 동시대 아시아영화의 거장 3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시종일관 여유있는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6년을 데리고 키운 그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밝혀졌을 때 그 순간부터 그 아이는 남의 아이인가 여전히 내 아이인가. 혹은 내가 낳은 아이가 남의 손에서 6년을 고이 자랐을 때 그 아이는 내 아이인가 혹은 남의 아이인가. 그걸 알게 된 부모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막막한 질문 앞에서 자신 또한 고민을 많이 했음을 주저하지 않고 고백했다. 동시에 이것이 누구에게라도 주어질 수 있는 난감하고도 보편적인 선택의 질문이라는 사실 또한 내내 강조했다.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한 생각을, 그리고 때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면서 이 이야기가 아버지로서, 자식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말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이 영화의 시작은 무엇인가. =나에게는 5살짜리 딸이 있다. 아마 이만한 나이의 자식을 둔 아버지라면 대부분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일 텐데, 나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딸과 자주 놀아주지 못한다. 그런데 아내와 딸의 관계를 보면서 뭔가 나와 딸의 관계와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 것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내 딸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무엇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드는가, 하고 말이다. 단지 딸이 내 피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혈육이라는 점보다 실은 더 중요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과정 속에서, 1970년대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를 결합해보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어느 병원에서 태어난 두 아이가 뒤바뀐 사건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이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묻고자 하는 질문들은 더욱 복잡한 상황 속에 던져졌다. 이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집필을 할 당시에, 당신이 주인공 입장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있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 아버지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여러 번 생각해보았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 부모들 중 거의 100%가 길러왔던 자식이 아닌 친자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피가 함께한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 문제는 물론 나라와 문화마다 선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일본 아버지라면 당신 역시 친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점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는 거다. 아내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아이를 택할 것 같으냐고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아내는 나와는 다르게 당연히 6년을 함께 보낸 아이를 선택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그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과연 아버지의 입장에서 친자식이 다른 가족 안에서 그리고 다른 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의견 차이는 성별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개인 차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주 흥미로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30, 4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는 아이가 바뀌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이 문제는 누군가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의견 차이를 보일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가족은 사실 아주 많이 다르다. 한쪽은 부유하지만 엄격하게 아이를 기르고 또 한쪽은 넉넉하지는 않아도 아이들을 자유롭게 기른다. =이번 영화에서는 서로 다르게 대조적인 두 가족을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두 가족이 일본의 사회 계급 구조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논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는 부유한 집의 아버지가 상대편 가난한 가족의 아버지를 무시하고 깔보았다가 점차 그가 무시했던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은 아버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점이다. 굳이 내 의도를 말하자면, 이런 깨달음이 아주 힘든 상황 속에 처한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일어나게 하고 싶었다.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사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가족의 아버지 캐릭터는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친구를 원형으로 한 것이다. 영화 속 그 아버지처럼 내 친구도 평생을 열심히 일했지만 그에 걸맞을 정도의 성공을 하지 못했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다. 하지만 영화 속 그 아버지처럼 장난감을 얼마나 잘 고치는지 아이들이 정말 그를 존경하고 좋아한다. (웃음) 나도 그를 아주 좋아하지만, 가끔은 아버지 대 아버지로서 그 친구를 이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웃음)

-이번 영화도 그렇고 <아무도 모른다>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도 그러한데, 저마다의 가족사적 문제를 지닌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런가. 가족은 내게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예를 들면 <아무도 모른다>를 찍을 당시 가족에 대한 관점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그 영화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만든 영화였다. 하지만 그 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내 자신이 아빠가 되면서 조금씩 변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의 시각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아마도 60, 70대가 되면 또 달라진 시각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게 될 거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처한 상황과 주어진 역할이 달라지면서 가족에 대한 내 생각도 변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내 영화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역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웃음)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촬영을 하면 촬영장 분위기가 아주 활기차다. 언제나 좋은 자극을 받게 된다. 감독으로서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표정과 동작을 끌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다. 가령 성인배우들은 일종의 자기 연기 스타일의 변화를 겪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어울려 연기하는 동안 자신의 기존 연기 스타일을 대체로 잊게 되고, 상대하는 아이들의 연기에 어울릴 수 있도록 성인배우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기를 배워본 적 없는 아이들일 경우에는 더하다. 그런 과정을 촬영장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촬영이 시작된 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서서히 영화 속 아버지 노노미야 료타가 되어갔다. 하지만 아이들의 연기는 내가 지도한 게 없다. 그냥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괜히 이래라저래라 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수용해야 한다는 게 아역배우를 대하는 내 자세다.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 우리 어른들은 두 아이들에게 연신 반응하고 맞추어나가며 조금씩 변해갔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내게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해주었다. ‘맞아. 바로 그거야’라고.

-<아무도 모른다>와 <걸어도 걸어도>,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 당신이 일종의 일본 가족 연작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웃음)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잠시 생각), 그 영화들의 연관성을 묻자면, 나 스스로도 흥미롭기는 하다. 예를 들어 <걸어도 걸어도>의 아베 히로시가 맡은 아버지 캐릭터의 이름도 료타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주인공 아버지와 같은 이름이다. <걸어도 걸어도>는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만들었고 그 뒤 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내 생각에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걸어도 걸어도>를 형제영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당신의 영화를 보고 나면 여전히 오즈 야스지로 영화와의 연관성을 묻게 된다. 혹시 당신 스스로 오즈를 계승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인가. =재미있는 것은 언제나 모두가 나의 영화를 보고 오즈 야스지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실은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질문을 들으면 그제야 꼭 ‘이제 생각해볼게요’라고 말하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가 아주 특별한 감독이기는 하지만, 한번도 그에게 영감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 오즈 야스지로보다는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팬이었고 그의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항상 영화를 만들 때마다 그의 영화를 여러모로 참고한다.

-성인배우에 대한 질문도 해보자. 어떻게 후쿠야마 마사하루를 캐스팅했나. =우선은, 내가 아니라 후쿠야마가 나에게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해왔다. (웃음) 그가 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더라면 나는 그를 캐스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나는 잘 맞았고 그는 커뮤니케이션에 아주 능한 사람이다. 촬영하는 동안 아내를 연기한 여배우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로 나온 아이들과도 소통을 잘했다. 나 또한 그런 그가 좋았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 사이에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밖에도 내 영화에는 40대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걸어도 걸어도>의 주인공이었던 아베 히로시와 이 영화의 후쿠야마 마사하루 역시 모두 40대로 나보다 조금 어리지만 우린 모두 같은 세대인 셈이다. 이들에게 쉽게 내 자신을 투영할 수 있어서 항상 이들과의 작업을 선호하게 된다.

-이번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중에도 종종 가족의 이야기를 즐겨하는 두명의 미국 감독이 있다. 리안과 스티븐 스필버그. 그들의 존재가 혹시 당신에게 수상의 기대를 심어주지는 않는가. =그들이 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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