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 불화를 다룬 TV 솔루션 프로그램들은 대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격렬한 갈등상황에 놓인 문제가족의 변화와 화해를 통해 가벼운 깨달음을 얻은 뒤 기승전결이 끝난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성된다. 한데 지난해 이맘때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간격으로 각 2회씩 3부가 방영된 <SBS 스페셜-무언가족>을 볼 때만큼은 맘이 편치 못했다. 상담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를 얻은 가족이 있는데도, 어쩐지 해결의 후련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족>에 출연한 다양한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상당 부분 돈과 시간에서 출발한다. 시간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동안 소외된 이는 입을 닫고, 돈을 벌지 못해 시간이 남는 쪽은 경멸과 무시 속에 곪아간다. 남의 성공담에 혹하는 현실감각 없는 남편에게 “말 같은 소리를 해. 역겨워 듣기 싫어 죽겠어”라고 쏘아붙이며 품 안의 개에게 “아빠 물어!”라고 지시하는 아내.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아버지를 피해 장애를 가진 엄마와 함께 방문을 닫고 1년을 버틴 아들은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엄마에게 “빌미거리 만들지 마”, “연기자네 연기자”라고 비아냥댄다. 이 밖에도 <무언가족>에는 가족간 말싸움의 패턴이 고스란히 채집되어 있다. “돈 100만원은 우스워요.” “저걸 새끼라고 낳아서.” “아빠가 스스로 자초한 거예요.” “내가 얘기했어? 안 했어?” 그저 옮겨 적는 것만으로 몸살 기운이 엄습한다! 유사한 방송을 보며 ‘우리는 저 정도는 아니었으니 괜찮다’ 안도감을 느끼며 잘잘못을 가리던 재판관 시점의 쾌감은 간데없다.
가족 구성원이 집 밖의 스트레스를 가족 안에서 풀 때, 그것을 감당하는 사람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납득할 만한 원인을 변명거리로 삼아 가시 돋친 방패를 두르고 돌진한다. 그리고 자신 혹은 다른 가족 구성원을 원인으로 지목해 고립시키는 정신적 폭력의 연쇄 속에서 말을 매개로 하는 무시와 모욕, 경멸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이가 뒤늦게 회한을 담아 하소연하지만, 나머지 가족은 거의 모든 사례에서 입을 모은다. ‘이제 와서 왜?’ 가까운 사이의 정신적 폭력을 견디다 노이로제 상태에 이른 가족은 저쪽이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만으로도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한 듯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 이때 심리치료사가 부모나 조부모 역을 맡아 “아버지는 너를 사랑한단다”, “아비다, 네가 나를 닮았구나” 등의 다소 우스꽝스런 역할극을 마련하면 상담가족들은 곧 눈물을 흘리며 후련한 표정을 짓는다.
물론 나는 이런 유의 심리치료가 흡사 현세의 불행 원인을 조상님에게 돌리거나 마음을 읽어 치유를 시도하는 무속인 역할과 별반 다르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냉소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화해장면으로 가족문제에 손쉽게 해결의 마침표를 찍지 않는 이 시리즈의 태도만큼은 유사한 형식의 방송들과 비교해볼 만하다. 가족 모두가 경쟁에 내몰린 사회에서 발생하는 가족 내 고립을 다룬 <무언가족>은 화목한 가족과 행복한 가정이라는, 현실세계에선 영 모호한 이상향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또한 관계회복은 늘 ‘과정’으로 주의 깊게 접근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해 굳은 마음을 녹이고 고립을 해소하는 상담 및 심리치유도 과정의 첫 단추로 수긍할 수 있게 한다. 부부의 화해 이후에도 여전히 방문을 걸어 잠근 아들을 6개월 뒤의 프로그램에서 다시 찾아 치료를 주선하는 것. 이 점이 당장 다음주 방송할 문제가족을 찾아 재빨리 해결하는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차이며, 시간 간격을 둔 시리즈물인 <무언가족>의 가치다.
+α
심리상담 이후 그들은…
폭언이 그친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아내 뒤에서 여전히 위세를 과시하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생활비를 목돈으로 맡기라는 심리학 교수의 조언에 ‘목돈의 개념이 어디까진지’ 어물거리는 남자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오로지 지적하기 위해 냉장고를 뒤지던 남자가 상담 이후 빨래를 개키며 살림을 돕는 것을 보니, 자기만족이 가져오는 관계의 평화를 생각하게 된다. 애초 상담의 목표는 인간개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