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봤는데 어쩌다 보니 연예매체 기자가 되어 있었다. 우연을 직업으로 만든 가장 큰 동력은 아마도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저 화려하고 아름답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스타들은 과연 카메라가 꺼지면 어떤 인간이 될까. 누구는 바람둥이라던데, 알고 보면 그렇게 거만하다던데, A랑 B는 몰래 사귄다던데, 정말일까. 물론 그 세계에 한발 가까워졌다 해서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과거엔 ‘이니셜 기사’로 돌았고 요즘은 스마트폰 메신저로 전해지는 ‘증권가 찌라시’조차 친구들 중 누구보다 늦게 접하는 바람에 “그러고도 기자냐”는 구박만 숱하게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에도 덤덤해졌다. 스타들을 둘러싼 ‘충격’과 ‘논란’의 도가니는 지겨울 만큼 뜨거웠고,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몇 차례 깨닫고 나니 허무해졌다.
이토록 가십이 강같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등장한 tvN <우와한 녀>는 낚시성 기사 제목 스타일로 요약하면 “충격! 톱스타 부부의 성생활 속사정”이나 “젠틀맨 아나운서 알고 보니 가정교사와 밤마다…헉!”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존경받는 뉴스 앵커 공정한(박성웅)과, 여배우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뒤 공정한과의 결혼생활을 발판 삼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조아라(오현경) 부부는 누가 봐도 완벽한 커플이지만 실상은 KBS <사랑과 전쟁> 특집감이다. 아내와 한침대를 쓰면서도 십수년 동안 “손도 안 잡고 정말 잠만 잔” 공정한은 섹스리스를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조아라에게 내 이력에 조금의 흠집도 낼 수 없다며 거부한다. 심지어 공정한은 이 와중에도 자신이 성기능장애를 겪고 있는 줄 알고 안타까워하던 조아라의 뒤통수를 치듯 애인을 데려와 함께 살겠다고 소개시키는데, 그가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애인은 바로 아들 민규(진영)의 예전 과외선생인 성기(권율)다.
그러니까 남편은 남자 애인을 데려와서는 “나 게이인 거 몰랐냐”며 적반하장으로 굴고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부인은 옆집 건장한 남자를 보며 침을 삼키고 아들은 부모더러 이혼할 거면 모든 재산을 현금화해서 3등분해야 한다며 우겨대는 이 국민 커플의 가정은 역대급 콩가루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과 재벌 친부모와 팥쥐적 악녀와 캔디렐라 여주인공을 믹서에 넣고 돌린 뒤 ‘사랑’과 ‘가족’이라는 명분을 붙여 찍어내는 양산형 막장 사이에서, <우와한 녀>는 기존의 갈등 구조를 비웃듯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을 향한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유별나게 순수성을 강조하거나 이성애자의 일시적 정체성 혼란이라는 식으로 피해가지 않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배짱은 특히 인상적이다. 게다가 누구보다 나 자신이 먼저인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들이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는 상황에서 교묘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과정은 모든 고난과 숙제를 한명의 천사나 실장님에게 떠넘겨 해결하는 세계보다 훨씬 흥미롭다. 남편과의 불화설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임신설을 직접 유포한 조아라의 반격, 그 이후가 현실의 이니셜 기사 주인공보다 궁금한 것도 그래서다. 가십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쓰고 싶어 하지 않는 나 역시 그들처럼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므로.
+α
<우와한 녀>, 누가누가 막말하나
1 아들 전학시키면서 엄마 아빠 정체는 절대 숨기고 동명이인이라 말하라고 당부하는 부모. 2 비밀 지키는 대신 자가용과 월 500만원 한도의 신용카드 요구하며 계약서 쓰자는 아들. 3 새로 온 전학생은 유학 가서 사고치고 돌아온 놈 같으니 상종하지 말라고, 똥은 피하는 거라고 말하는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