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3>는 개봉관 1천개라는 한국영화 배급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1380. 우리는 이 숫자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어쩌면 한국 영화사에 남을 부끄러운 숫자다. 천삼백팔십. 이것은 무너진 주가지수도, 치솟은 원달러 환율도 아니다. 이것은 <아이언맨3>가 지난 4월28일 일요일, 개봉 3일 만에 대한민국의 극장가를 잡아먹은 숫자이다. 무기를 팔아 엄청난 부자가 된 토니 스타크가 천하무적 철갑옷을 만들어 세계의 정의를 지키는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절반을 넘는 상영관을 점령하며 뜻밖의 불의를 저질렀다. 멀티플렉스는 거의 모노플렉스가 되어버렸으며 상영관이 줄줄이 반 토막난 다른 영화들은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토니 스타크에겐 미안하지만 아이언맨은 글자 그대로 철면피맨이 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4월28일 기준으로 1위인 <아이언맨3>는 1380개의 상영관을 잡았고 전국에서 하루에 7179회 상영되었다. 반면에 2위인 <전설의 주먹>은 그 3분의 1도 안되는 382개에 총 1352회, 6위인 <런닝맨>은 199개에 507회, 10위인 <노리개>는 142개에 272회 상영되었다(물론 이런 불이익은 다른 외화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상영관이 반 토막나도 관객이 볼 기회가 완전 차단된 것은 아니기에 극장들은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분석을 해보면 여기엔 큰 구멍이 있다. 중요한 건 상영관 수가 아니라 하루에 몇번 상영하느냐이기 때문이다. 사실 통합전산망에 나온 1등부터 10등까지 상영관 수를 더하면 3천개가 넘는다. 우리나라엔 극장이 2400개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같은 극장에서 하루에 두세편을 겹쳐서 상영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퐁당퐁당, 교차상영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의 토니 스타크가 혈압이 치솟을 불의를 자행한다.
위 데이터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아이언맨3>의 하루 평균 상영 횟수는 5.2회, <전설의 주먹>은 3.5회, <런닝맨>은 2.5회다. 게다가 아래로 갈수록 황금시간대엔 주어지지 않고 아침이나 밤늦게 걸린다. 결과는 매출액의 엄청난 차이로 이어져 <아이언맨3>는 이날 68억원의 매출로 전체의 83%를 독식했다. <전설의 주먹>은 2위가 무색하게 불과 4.8%, <런닝맨>은 1.1%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 승자독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개봉관 1천개라는, 한국 영화 배급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아이언맨3>는 경제민주화에 역주행하는 강자의 횡포이며, 뒤이어 개봉될 국내외 블록버스터들에 악영향을 줄 탐욕의 바벨탑이다. 무엇보다 할리우드의 압력이 아니라 한국 극장들이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자초한 일이라는 점에서 극장을 소유한 대기업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아이언맨, 철면피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