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다른 다큐물 <그것이 알고 싶다>와 <다큐멘터리 3일>을 비교하는 건, 내게 박찬욱과 홍상수의 영화를 대비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박찬욱의 <스토커>와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다르지만, 빼도박도 못할 공통점은 갈등을 스토리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거다. <스토커>의 18살 소녀는 외부(특정 남자)에서 비롯한 갈등을 몸소 해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변하는 성취를 이룬다. 반면 <누구의…>의 해원은 외부(남자들)에서 던지는 갈등을 통해 번지는 미묘한 파장을 좇아갈 뿐이다. 남자들도 해원도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인물 내부도 그닥 변하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다행스럽게도 내겐 홍상수의 미시적 갈등과 그로 인한 파장의 무늬가 정겹고, 전형적 구조 안에서 맘껏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박찬욱 스타일은 흥겹다.
박찬욱 스타일의 쾌락
해결보다 미세함을 포착하려는 <다큐멘터리 3일>이 홍상수의 태도를 닮았다면, 내게 언제나 쾌락적인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박찬욱을 떠올린다. 지적 호기심을 달구고, 정의에 대한 갈망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취재한 사실을 스릴러나 누아르처럼 구성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언제부턴가 영화적 플롯이 매우 세졌다. 눈앞에 놓인 문을 열어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만큼 문손잡이가 유혹적이거나 문 안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젖히면 또 다른 문이 나타난다. 귀찮아서 돌아설까 싶은데 김상중이 나타나 깔끔한 매너로 그 문을 친절하게 열어준다. 그런데 방 안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번에는 오른편에 또 다른 문이 버티고 있는데 반쯤 열려 있다.
최근작 몇편만 봐도 이 패턴이 반복된다. ‘북파공작원 빵빠레와 빠삐용’편은 44살 조재봉씨의 평범하지만, 이상한 일상들로 시작한다. 자판기에서 연신 커피를 내려 먹고, 계속해서 물을 여러 컵 마신다. 조그만 담벼락에 올라섰다 조심스레 뛰어내린다. 정신연령이 열살 전후라는데 갑자기 그가 20년 전에는 똑똑하고 멋진 청년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다른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청년이 군대에 갔지만 거기에는 일체의 면회나 휴가, 외박도 없었다. 입대와 제대 전후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 낯선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군대 동기들을 만났더니 조씨는 동기들 중에서 엘리트였다고 한다. 군대 3년이 후 20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대체 무슨 말인가. 이때 주인공 조씨는 사라지고 다른 문이 열린다. 어떤 군대였는지 증언자들이 쏟아지고, 전국군정보사령관이 등장해 증언의 질은 수직상승한다. 훈련녹화장면을 보던 국회의원이 울렁증을 참지 못하고 약까지 먹을 정도였고, 특공무술이 아니라 살인기술을 가르쳤다.
흥행영화들이 관객의 감정을 몰고가다 절정에서 결정적 한방을 날리듯 이 시사다큐도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부대 인근에 여자들을 불러놓고 빨간집이라 불리는 위안소를 운영하며 부대원들을 분기마다 반강제로 넣고 재웠다. 그리고 위장된 사망사고들의 진실을 터뜨린다. 21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우리 군대 이야기다. <실미도>가 무색하다.
장르도 다양하다. ‘비열한 거리’편 1, 2부는 갱스터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고 실제로 폭력과 돈갈취를 조폭처럼 해대는 10대 ‘가출팸’ 스토리를 파고든다. 10대 가출 소녀가 채팅으로 성관계를 맺자고 초등학생을 유혹한 뒤 소년이 아이의 집에 따라 들어가 협박하며 집 안의 귀중품을 터는 신에서 시작한다. 왜소해서 부림만 받다가 조직의 잔혹한 우두머리가 된 스카페이스 같은 캐릭터도 등장한다. 장선우의 <나쁜 영화>나 임상수의 <눈물>보다 조직적으로 나빠지고 그래서 더 슬픈 십대의 현실이 방마다 가득하다. ‘VIP병동 1008호의 비밀’편에는 불사신처럼 부활하는 악당(교육자)이 등장하는 캐릭터 다큐이며, ‘하나의 시신, 두 개의 이름’편은 1년 전 실종된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통보와 함께 생판 모르는 가족이 장례를 치르고 화장까지 해버린 충격적 사연을 캐는 미스터리물이다.
이미 취재된 사실을 감춰두고 미끼 던지듯 하나씩 알려주는 방식이 때론 불편하거나 답답하기도 하다. 장르가 매번 성공적이진 않아서 ‘밀물에 떠오른 토막시체’편이나 ‘비열한 거리’편 1부는 발단이 좋았으나 이후 스토리가 나열식이어서 졸음에 포획된 경우다.
다큐의 힘
문득 박진표 감독이 떠오른다. <죽어도 좋아!>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더니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 <내 사랑 내 곁에>로 일련의 흥행작을 내놓은 감독은 오랫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 PD였다. 그는 매번 팩트에서 출발해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는 성공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늘 해주지 못해 먹먹한 느낌으로 남는 것을 그가 진짜 영화로 해결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갈등의 적절한 해소, 캐릭터 내외부의 변화라는 ‘해결’ 말이다. <그놈 목소리>만 예외였으나 제작자로 나서서 속편 격인 <공범>을 만들어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니 ‘해결’에 몹시 목말랐나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3일>을 오래오래 쌓아가면 박찬욱 같은 다큐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12편의 영화를 봤는데 제일 좋았던 것이 다큐멘터리 <생은 다른 곳에>였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같은 인물을 되풀이 찾아가 찍었고, 시간 순으로 편집했다. 주인공은 아무 연관성 없는 세 나라의 세명이다. 보스니아의 가난한 양치기 할아버지, 쿠바에서 갑갑증을 느끼는 정신과 의사, 스위스의 풍요로움이 묻어나는 중년의 간호사다. 모두 삶의 변화를 원한다. 10년이란 긴 시간 때문인지 세 인물은 각자의 갈등을 폭발시키거나 해소했고, 그 내면은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각기 다른 장르 형식으로 위기감과 폭발성을 지닌 스토리(인생)를 엮어낸다. 해피엔딩과 비극이 미묘하게 얽혀 색다른 결말을 맛보여줬다. 다큐의 힘이라니!
(지난해 칸영화제 마켓에 잠시 들렀다가 접한 몇 안되는 영화 중에 제일 좋았던 것도 다큐멘터리였다.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를 다룬 <문 라이더>(Moon Rider)인데 <다큐멘터리 3일>을 뮤직비디오처럼 찍었달까. 올해 전주영화제 상영목록에 올라 있다.)
공포스런 캐릭터 스릴러
<그것이 알고 싶다> ‘공모자들-누가 그녀를 가뒀나’편
화면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무시무시한 캐릭터가 버티고 선 스릴러 다큐였다. 차량 한대가 한밤의 응급이송차량을 뒤쫓는다. “가운데 앉은 여자가 (납치된) 내 약혼녀 허인혜 맞아요, 맞아.” 곧 차량을 놓치고 만다. 며칠 전, 허씨는 약혼자와의 전화 통화 중 초인종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CCTV를 확인해보니, 5년 만에 나타난 전남편의 아들(캐나다 유학 중)이 건장한 남자 둘과 주변을 서성인다. 스님 복장의 여자도 보인다. 잠시 뒤 그들은 허씨를 결박한 채 어디론가 끌고 간다. 허씨는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시인으로 재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5년 동안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던 아들이 나타나 멀쩡한 그녀를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감금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혼 뒤에 전남편에게서 숨겨진 재산 150억원가량이 발견돼 재산분할소송 중이었다.
병원 관계자의 도움으로 어렵게 연결된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허씨의 말이 놀랍다. “난 너무 억울해요. 정신병도 아무것도 없는데 재산분할 때문에. 난 죽는 줄 알았어요. 흑흑. 얼마나 폭행을 많이 당했는데. 순천으로 갔다가 안산으로 끌려오고.”
응급이송단 중에는 브로커와 병원이 연계돼 있다. 허씨는 이송 중에 ‘진짜 미쳐서 이렇게 가는 사람 없습니다. 포기각서 쓰고 편안히 사세요’라는 이송자의 조언도 듣는다. 또다시 병원을 옮기는 허씨를 약혼자와 취재진이 아슬아슬하게 추격하며, 경찰에 납치 신고를 한다. 허씨는 외진 병원에 도착해 승강이 끝에 자유를 되찾는다. 그러나 언제 아들이 나타나 또 감금할지 몰라 허씨는 제3의 장소에 은신한다. “정말 착한 아들이었는데, 눈도 안 맞춰줘요.”
아들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렵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더 궁금한 건 이따금 등장해 아들을 ‘지휘’하는 승려 복장의 여자 캐릭터다. 그녀는 전남편과 연계돼 있다는 속내를 언뜻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