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당신의 TV는 텍스트다’ 특집에서 <다큐멘터리 3일>에 대한 글을 썼는데, 1년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다. 대통령도 바뀌었고, 내 나이 뒷자리도 바뀌었고, <씨네21> 편집장도 바뀌었고, 꽃잎이 떨어지는 자리도 바뀌었고, 그리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게 바뀌었을 것이다. 도도한 시간의 물살이 우리를 어디론가 이끌어가고 있는데, 같은 컨셉의 원고를 2년 연속 같은 필자에게 청탁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곁들여 달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겠지(아니면 편집부가 게으른 건가, 하하하, 저야 좋습니다만).
1년 사이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많이 바뀌었다. 바뀌었다기보다 요즘엔 텔레비전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내가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 텔레비전이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인지, 아무튼 좀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도 이젠 좀 지지부진하고 내 마음을 확 잡아 끄는 프로그램도 없다보니 텔레비전 켤 일이 줄어들고 있다. <무한도전> <썰전> <인간의 조건>이 그나마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영원한 1등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이하 <라디오 스타>)가 있다.
지난해 ‘당신의 TV는 텍스트다’의 청탁을 받고 곧바로 <라디오 스타>를 떠올렸지만, <라디오 스타>는 ‘물’ 같은 프로그램이고 <다큐멘터리 3일>은 ‘탄산수’ 같은 프로그램이다보니 좀더 쓸 얘기가 많은 ‘탄산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졌다.
라디오의 원리로 만든 TV 프로그램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나만의 방이 필요할 때마다 책상 위의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내 주위의 커튼이 되었고, 나는 언제나 혼자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울 때도, 밖에서 누군가 시끄럽게 떠들 때도, 내 주변의 소리들이 지옥의 비명처럼 느껴질 때도, 수학책으로 몰입해 들어가고 싶을 때도(이건 좀 효과가 없더군)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는 다른 차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웜홀이었고,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망토였고, 외부로부터 나를 방어해주는 보호막이었다. 현실이 불쾌하고 사는 게 고역이던 한 예민한 아이는 라디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거기서 들었던 음악을 다 기억하고 있다. 거기서 들었던 말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유머도 거기서 배웠고, 책도 거기에서 알았다. 라디오 속에 등장하는 사연들을 들으며 그런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라디오 스타> 소개에서 ‘라디오’ 얘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것은 프로그램 제목이 ‘라디오 스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디오 스타>가 ‘라디오’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 스타>가 첫 방송을 시작할 때는 좀 어이없어 보이긴 했다. 보이는 라디오와 다를 게 없었다. 2인자들로 구성된 진행자들은 일어나기도 귀찮아했고, 앉아서 떠들기만 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메인 DJ’라는 말도 안되는 설정부터 게스트를 불러놓고 자기들끼리만 떠들고 있는 황당무계한 진행 방식까지,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치곤 모든 게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낯섦이 매력으로 변했다. <무릎팍도사>에 밀려 때론 5분 방송의 굴욕도 당하고, 때론 통편집의 수모도 겪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독자적인 프로그램이 됐다.
<라디오 스타>는 무리해서 많은 걸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지만, 보여주기보다는 들려주려고 한다. 예쁜 풍경도 없고 화려한 세트도 없다. ‘고품격 음악방송’이라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매주 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조촐하고, 옹색하고, 소박하다. 공연 세트 한번 만들어놓고는 오랫동안 생색을 낸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놓은 다음 네 검객들의 본격적인 쇼가 시작된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과도를 들고 게스트들의 껍질을 예쁘게 까준다면, <라디오 스타>의 DJ들은 좀더 큰 칼로 마음을 깊이 찌른다. 게스트들만 찌르는 건 아니다. 옆에 앉은 DJ를 서로 찌르기도 하고, 자신을 찌르기도 하고, 때로는 누굴 찌르는지도 모르고 찌르기도 한다. 껍질은 진작에 다 벗겨졌다. 상처가 남지만, 이것은 누구의 상처일까. 모르겠다. 때로 <라디오 스타>는 말로 하는 굿판 같기도 하다. 신나게 웃고 떠들고 나면 뭔가 바뀌어 있다. 좋아하지 않았던 게스트인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싫지 않다. 좋아하기엔 아직은 힘들지만 싫어할 수는 없다.
선을 넘고 도를 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람을 사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말 때문이다. 어떤 말은 너무 부족하고, 어떤 말은 너무 과한 것 같다. 어릴 때 우리는 몸으로 친해졌지만 이제는 말로 친해진다. 자신과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과 친해지기 힘들다. 때로는 그게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고 싶은 말,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나서야 친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자신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또는 들으면서) 말의 수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라디오 스타>에는 선을 넘어가는 말의 쾌감이 있고, 도가 지나친 농담의 악랄함이 있다. 속이 시원할 때가 많다. 어릴 때 라디오를 들으면서 느꼈던 말의 쾌감을 <라디오 스타>에서 다시 듣고 있다.
<라디오 스타> 제작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주로 <라디오 스타>를 듣는 편이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라디오처럼 이용한다. 들으면서 그림 작업을 하거나 영상 편집 작업을 한다. 그러다 가끔 이상한 묘기 자랑 같은 걸 할 때만 영상을 본다. 그렇게 듣기만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내게 진정한 라디오 스타다. 어릴 때와 달리 지금은 내 방도 있고, 작업실도 있지만, 완전한 혼자가 되고 싶을 때 소리로 나를 둘러싼다. 아늑하다.
다음주 방송분이 최고?
<라디오 스타> 최고의 에피소드 ‘해돋이 특집’
단언컨대, 단 한회도 재미없었던 적은 없다. <라디오 스타>는 게스트가 중요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아, 이번엔 정말 내가 싫어하는 게스트네’라고 생각할 때도 재미있고,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게스트네’라고 생각할 때도 재미있다. 김구라가 빠진 게 1년이나 지났는데, 그게 좀 아쉽긴 하다. 진정한 드림팀이 되려면 김구라와 신정환까지 가세해서 6인 체제로 가야 한다(와, 정말 난장판이 되겠구나). “저의 대표작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범하고 뻔뻔한 소설가처럼(그게 접니다!) <라디오 스타>의 최고회는 아직 보지 못한 다음주 방송분이다. 그래도 꼭 하나 꼽으라면, 지난 연초에 있었던 ‘해돋이 특집’이다. 예고편을 보다가 그렇게 ‘빵’ 터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머리카락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걸 이용해서 ‘해돋이 특집’을 기획하다니, 도대체 예의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야, 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라디오 스타>는 프로듀서와 작가, DJ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발 더 나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들이 챙겨오는 깨알 정보들은 ‘도대체 저런 걸 어디서 캐왔나’ 싶은 것들이 많다. 프로듀서들의 의연한 자막도 많다. ‘레전드’로 꼽히는 것 중에 이런 자막이 있다. ‘신나는 명절/ 정이 넘치는 한가위/ 환상의 연휴/ 정말 꿈만 같으셨죠?/ 신나는 휴일도 오늘로 끝!/ 차분한 일상을 위한 마지막 추석 파티!/ 여기는 고품격 추석 특집 방송’. DJ들의 오프닝을 자막으로 내보낸 것인데, 평범해 보이지만 앞 글자만 추려보면 ‘신정환 정신차려’다. 이런 멋진 사람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