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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일상성의 환희

MBC <일밤-아빠! 어디가?> 대리만족 일종의 포르노

개인 인터넷 방송 사이트로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BJ라고 합니다. 이들이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와 캠카메라를 연결해서 방송을 하면 사이트에 접속한 시청자들이 풍선을 선물하고 그 풍선은 실제 돈으로 환금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적 수익을 얻을 수 있기에 많은 BJ들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그런데 일반인 여성 부문 1위, 때론 전체 순위에서도 상위를 차지하는 여성 BJ가 있는데 그는 미모가 아닌, 먹는 것으로 승부를 겁니다. 이른바 ‘먹방’, 즉 먹는 방송이라고 해서 피자, 라면, 백반 또는 출장뷔페까지 한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그녀가 먹는 것을 중계하는데, 이미 많은 팬을 확보 중이고 3만명이 넘는 추천인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유의 위트있는 진행과 코믹댄스도 그의 인기에서 한몫을 하지만 먹는 모습이 킬러 콘텐츠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도 직접 영상을 찾아서 봤습니다만,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참, 특이한 일이죠. 다른 사람이 맛나게 먹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을 넘어선 희열을 느끼며 직접 돈까지 지불하는 세상. 생각해보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은 생각만큼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노동현장 주변의 식당은 부동산 임대료와 시설비를 감당하기 위해 중국인 노동자와 중국산 찐쌀을 선택하지 않으면 수지타산도 맞추기 힘들 정도이고 어쩌다 한번 가보는 고급 식당은 먹는 것이 아니라 직장상사나 거래처 등 접대의 성격이 강한 어려운 자리입니다.

착해도 너무 착해

타인의 위장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며 같이 포만감을 느끼는 것. 우린 TV화면을 통해서 다양한 대리만족을 즐기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대거 등장해서 각종 미션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8년째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에 도전을 하기도 하지만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 2일>)류의 프로그램처럼 친한 친구들로 설정이 된 이들이 야외로 놀러나가 민박집에서 끝말잇기를 하며 복불복을 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짓습니다.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느라 헝클어진 연예인들의 머리카락이 상징하는 것처럼 가식을 벗어버린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왜 TV화면을 통해서 이런 대리만족을 느낄까요. 그건 TV의 바깥 세상에서 느끼는 결핍 때문일 겁니다. 뭔가 있어 보이고 거창한 주제, 예를 들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또는 자격층 취득 같은 스펙에 대한 도전은 모두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비용은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OECD국가 중에서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에 살면서 나를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맘맞는 친구들이랑 같이 즐겁게 노는 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이 재밌게 노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죠.

<일밤-아빠! 어디가?>(이하 <아빠! 어디가?)는 이 대리만족의 판타지를 강렬하게 묘사한 일종의 포르노입니다. SBS의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서 봤던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에서 터져나왔던 즐거움의 코드와 KBS <1박2일>로 익숙한 숙박 버라이어티의 재미 코드를 적절하게 배합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착할 수밖에 없는, 아니 너무나 착한 프로그램입니다. 생명체는 자신과 유전자 풀을 공유하는 직계존속에겐 최대한의 배려를 베풉니다. 이런 본능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아빠들은 그에 맞게 착하게 행동합니다. 제작진도 착합니다. 바쁜 일정의 연예인들과 체력적으로 제한이 있는 아이들이 적절하게 소화할 수 있는 교훈적이거나 교육적인 내용이 포함된 착한 미션을 부여합니다. 시청자들도 착합니다. 부자가 손을 꼭 붙잡고 산과 들로 놀러다니며 같이 먹고 자며 가족간의 훈훈한 정을 확인하는 모습에 시청률로 화답합니다. 전임 사장 임기 내내 각종 구설수에 시달렸던 방송국도 행복해졌습니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주말 시간대에서 <아빠! 어디가?>의 선전은 시청률 상승은 물론 수십명의 아나운서와 기자 및 직원들이 책상없는 부서에 배치를 받거나 강제로 제빵교육을 받던 흑역사마저 지워버렸습니다. 기업들도 착합니다. 프로그램이 잘되도록 앞뒤에 광고를 넣고 아예 출연자들을 광고모델로 발탁합니다. 모두가 착하고 모두가 행복한 프로그램.

그런데 앞서 <아빠! 어디가?>를 판타지이자 포르노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비일상성이 가져다주는 자극의 강도가 세기 때문입니다. 포르노에서 종종 보는 금발의 백인 여성 3명이 남자주인공의 아랫도리만 보고 돌진하는 상황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자녀와 함께 떠나는 주말여행은 평일 업무의 피곤에 찌든 아빠의 육체적 한계와 경제적 비용 속에서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정작 떠났을 때 기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족과의 여행은 어떻습니까. 교통정체로 꼼짝도 못하는 자동차 안에서 갑갑하다고 칭얼대는 아이들과 카드값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 그리고 내일 출근해서 맞닥뜨려야 하는 산더미 같은 업무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대개 여행의 끝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힘도 돈도 없는 아빠들

<아빠! 어디가?>에서 부자가 보여주는 여행 모습은 소박해 보입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 화면상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꽤 많은 이들의 집단노동의 결과물입니다. 프로듀서와 조연출, 메인작가와 막내작가까지 5~7명, 현장 스크립터와 조명, 팀당 최소 2대의 카메라, 스타일리스트까지 하면 출연진 이외에 50~60명이 승합차와 관광버스를 이용해 움직입니다. 아마 한회 분량을 찍기 위해 200여개의 테이프를 사용할 겁니다.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기 이전엔 이렇게 촬영했다면 편집도 못했을 겁니다. 촬영 현장에서 클라이맥스가 되는 ‘야마’를 기록한 스탭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화면에서 여러 테이프를 동시에 틀어놓고 그 ‘야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상을 취사선택합니다. 각종 효과를 넣고 자막과 음악을 넣어서 시청자에게 이 판타지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시청자는 막대한 제작비와 첨단기술과 집단노동의 결과물을 보고 울고 웃습니다. 얼마 전 정부가 대체휴일을 도입한다고 하자 재계에서는 30조원의 손실이 우려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노는 것을, 아니 노동자의 최소한 휴식마저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현실 속의 아빠들은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돈도 없습니다.

기사회생으로 천하무적

MBC의 헐크 업 <아빠! 어디가?> 첫회

HULK UP. 이 단어를 아시는 분은 일단 국민연금 꼬박꼬박 내고 암보험도 미리 가입해두는 게 좋습니다. 연식이 있다는 것이니까요. 1980년대 후반부터 세계 최대의 프로레슬링단체 WWF를 호령했던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 헐크 호건이 악당들의 무자비한 린치나 반칙세례 속에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가 더 이상 참고 인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면 벌떡 일어납니다.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자신이 헐크 모드 즉 무적상태에 돌입했다는 것을 관객과 상대 레슬러에게 확실하게 어필한 다음 치켜올린 검지를 좌우로 흔들면서 외칩니다. ‘왓츠고나두.’ 깜짝 놀란 악당들이 호건을 둘러싸고 펀치와 킥 세례를 퍼붓지만 무적 모드에 들어간 헐크 호건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왜나햐면 그는 이미 무적이니까요. 24인치나 되는 팔뚝을 휘두르며 무쇠펀치를 날리고 로프반동으로 돌아오는 악당에게 빅풋 공격으로 쓰러뜨리고 레그드롭을 얼굴에 작렬하며 경기를 마무리합니다. <아빠! 어디가?>는 MBC의 헐크 업입니다. 땅에 떨어진 공중파 방송사의 이미지와 연전연패하던 간판 프로그램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가 헐크 업 무적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시청률 14%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포털뉴스에 MBC의 전임 사장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 다시 전면에 노출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주말 예능은 각 방송사의 자존심이 걸린 최전방 전투지역입니다. 이곳에서 MBC의 헐크 업에 경쟁사는 연예인들이 엄마를 모시고 나오는 집단토크쇼를 준비하는 궁여지책까지 내놨습니다. 그러나 MBC의 헐크업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갑습니다. 악당 레슬러인 제가 보기에도 다섯 부자의 활약은 너무나 즐겁기 때문입니다. 프로 레슬링이 쇼인 걸 알면서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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