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로뽑아안그럼다쳐.’ 띄어쓰기도 하지 않은 열개의 글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취재팀에서 편집팀으로 적을 옮긴 뒤 그에게 받은 첫 메일의 일부다(당시 <씨네21> 막내기자들은 1년간 편집팀에서 순환 근무를 했다). 글의 요지는 분명했다. 글자 수를 값으로 매기는 전보를 쓴다는 생각으로, 가능하다면 열자 이내로 간결하고도 적확하게 기사의 제목을 뽑아야 한다는 것. 게다가 그 제목은 섹시해야 한단다. 나도 덩달아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초짜 편집자로 1년을 보내며, 매주 ‘열자’와 사투를 벌이며 자주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제목을 가장 잘 뽑는 편집자로 정평이 난 사람답게, 고경태 편집장은 독자의 시선을 재빨리 가로채는 헤드라인의 중요성을 결코 가벼이 보지 않았다. 기사들이 터진 댐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마감날에도 특집과 기획, 표지의 제목을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교체하며 편집기자들과 함께 최선의 ‘후킹’을 고민했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영화잡지의 편집장이기 이전에 냉철한 잡지 코디네이터였다. 그런 그가 <씨네21>에 불러일으킨 변화는 적지 않았다. 오랫동안 잡지의 고정 코너였던 ‘이주의 한국인 무엇을 이야기할까’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가 폐지됐으며 칼럼이 대폭 늘어났고 프리뷰와 비평, 독자 면을 구획짓는 ‘섹션 대문’이 신설됐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론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그런 ‘모험’을 단행할 수 있었을까 싶다. 동료 매체 <필름2.0>의 폐간과 더불어 어떤 변화가 절실하던 시절, 고경태 편집장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굴러온 돌’ 같은 기획의 가능성을 대담하게 실험했다. 그는 그렇게 독자를 향한 새로운 유혹을 멈추지 않는 에디터였다.
그들 각자의 잡지관(觀)
후배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집과 고정 코너를 뽑았다
특집 / 막장드라마 전성시대 씨네리는 ‘문화 놀이터’
시사주간지 <한겨레21>, <한겨레>의 생활문화 매거진섹션 <esc>에 몸담으며 시의성과 사투를 벌여왔던 편집자 아니랄까봐. 고경태 편집장의 <씨네21>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을 아우르는 시의적절한 사안들을 조명했다. 당시 전국을 강타했던 슬리퍼 히트작이었던 <과속스캔들>,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흥행 비밀을 추적한 특집기사나 본격적으로 예능판에 뛰어든 배우들을 조명한 ‘배우, 새로운 놀이터를 찾다’ 같은 기획이 그 예다. 특히 점만 찍었는데 아무도 몰라보던 <아내의 유혹>의 은재, <너는 내 운명>의 ‘발호세’ 등 시청률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던 막장드라마와 캐릭터의 폐해를 지적한 특집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씁쓸했다. 영화계의 혹독한 불황과 동료 매체의 폐간을 지켜봐야 했던 <씨네21>은 비슷한 시기, 영화의 오랜 친구 TV가 겪고 있던 구조적 폐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고정 코너 / 노순택의 사진의 털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필자
똑똑똑. 새롭게 문을 여는 칼럼들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씨네21>의 문을 두드린 시기였다. 문화인들의 길티한 취향을 엿보는 나의 길티플레저, 김연수-김중혁 작가의 나의 친구 그의 영화, 박중훈 스토리 등의 칼럼을 통해 영화계 안팎의 다양한 인사들이 <씨네21>의 필진 대열에 합류했다. 그중에서도 ‘사진의 털’을 연재한 노순택 사진작가의 ‘발견’을 언급하고 싶다. 고경태 편집장의 권유로 칼럼을 연재하게 된 그는 한국사회의 곳곳을 누비며 포착한, ‘몸통을 은유하는 깃털’ 같은 사진과 글을 보내왔다. 성실한 다큐멘터리스트이기도 한 그의 노고 덕분에 매주 일어나는 사건 사고(용산참사도 그랬다)에 대한 사진과 글을 발빠르게 실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사진과 글이 모두 되는”(고경태) 보기 드문 필자였다. 항상 글 앞에 섹시한 가제를 붙여 원고를 보내오던 그 덕분에 편집기자의 수고 또한 가벼워졌음을 이 자리를 통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