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네.” 그는 이 한마디로 기자들을 장악했던 편집장이다. 데스크 시스템에 올라간 기사가 교열과 편집을 거쳐 편집장의 통과만 기다리고 있는 순간. 그냥 통과하면 선방한 것이고, 불려가면 당연한 거였는데, 가끔 그는 이름을 불렀다. “병진~.” 이 말투가 참 오묘했다. “병진아!”도 아니고, “강병진!”이라고 끊어 부르는 것도 아니고, 이름의 끝자를 은근슬쩍 올리는 이상한 말투였다. 그러곤 잠시 침묵. 호명된 이상 나는 바로 달려갔다. 그에게 달려가면 기사의 품질에 대해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지적이 아니라 칭찬을 하려 할 때, 그는 침묵을 끊고 “재밌네”라고 말했다. 칭찬치고는 짧은 한마디였지만, 당시 <씨네21> 기자들에게 그의 “재밌네”는 밥값을 했다는 인증이었다. 그에게서 누군가가 “재밌네”라는 소리를 들으면, 다들 데스크 시스템으로 들어가 어떤 글이 왜 재밌는가를 살폈다. 지금 생각해봐도 긴장감이 탄탄한 호명과 침묵의 리듬이다.
그의 짧은 칭찬에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적어도 그가 재미에서만큼은 솔직했기 때문일 거다. 특집과 기획기사를 마무리하는 수요일 오후가 되어서도 그는 기자 시사에서 재밌는 영화를 보고 오면 바로 기획기사를 갈아치웠다. 다른 이들이 굳이 기획으로 내놓을 만한 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그는 그렇게 했다. 반면 미리 특집으로 잡아놓은 영화가 재미가 없으면, 기사의 톤을 바꾸거나 다른 특집으로 대체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가 재밌다고 하면 그것이 영화든 기사든 간에 정말 재밌는 거였다. 재미없는 걸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였다. 지난 2008년, 당시 편집장 퇴임을 앞두고 있던 그에게 “재밌네”란 칭찬이 주었던 즐거움에 대해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자주 해주는 건데.” 마음이 좀 짠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편집장이 재밌어할 만한 기사를 더 자주 쓰는 건데. 여기까지가 남동철 편집장 시대에 대한 좋은 추억이다. 서운했던 기억들도 차고 넘치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그들 각자의 잡지관(觀)
후배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집과 고정 코너를 뽑았다
고정 코너 / 이동진, 김혜리의 메신저토크 메신저 대화창이 지면으로
회사 컴퓨터에 몰래 띄워놓곤 하는 메신저 대화창이 <씨네21> 지면으로 들어온다면? 영화계의 두 스타 필자가 참여한 ‘이동진, 김혜리의 메신저토크’는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두 사람의 사려깊은 영화 수다는 물론이고 카센터에서 마이크 잡는 남자, 베르사유의 장모님 등 대화의 주제가 되는 영화에 따라 변화하는 대화명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고정 지면이었다.
특집 / 감독이 평론가에게 묻다 감독의 반격 “평론가들 부숴버리겠어”
후대의 누군가는 그를 ‘쌈닭’이라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씨네21> 역사상 가장 많은 인터넷 댓글수를 기록한 <디 워> 연속 기획기사를 주도하는 등 남동철 편집장 시절의 <씨네21>은 영화계 안팎의 사안에 대한 이슈 파이팅에 주목했다. 창간 12주년을 맞아 일일편집장으로 나선 정윤철 감독이 외로운 검객처럼 혈혈단신으로 정성일, 김영진, 황진미 평론가를 만난 ‘감독이 평론가에게 묻다’ 특집도 그 일환이었다. “후진 영화를 보고 감독을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요즘도 집에서 혼자 벽을 치는 걸까?” 같은 아슬아슬한 문장부터 “감독들에게 당신은 사이코패스인 듯한데” 같은 도발적인 질문까지. 평론가 vs 감독의 이 팽팽한 맞대결은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