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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또 묻고

당시 후배기자가 본 허문영 편집장은…

잊혀지지 않는 그의 표정들이 있다. 튀밥과 산나물을 한 봉지씩 양손에 번쩍 들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는 정말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튀밥과 산나물과 그걸 들고 저토록 흐뭇해하는 영화지 편집장이라니, 그 조합이 신기했다. 그건 선한 학생들로 가득한 어느 농업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받아온 귀한 강의료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물론 그의 가장 침통했던 표정도 기억난다. 갑작스럽게 퇴직 의사를 밝힌 뒤, 편집장으로서 마지막 호를 만들던 그 밤에 그런 표정을 보았다.

편집장 재직 시절에 그가 써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던 ‘편집장이 독자에게’라는 에디토리얼에 앞선 두 일화가 다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 에디토리얼(410호, 2003년 7월8∼15일)의 제목은 ‘선택’이다. 그러고 보면 튀밥도 산나물도 퇴직도 결과는 다르지만 전부 그의 선택의 다양한 결과다. 그리고 그의 에디토리얼은 상당수 일상의 경험과 영화적 경험을 경유하여 이 선택이라는 문제를 묻고 또 묻고 있었다. 중요한 건 선택과 동시에 늘 그 선택의 과정도 함께 질문했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그가 편집장으로서 무수히 했던 그 선택에 대한 질문, 그리고 지금의 그가 우리에게 보낸 소망으로서의 요청은 시간이 지났어도 맥락이 서로 닿아 있는 것 같다. 객관적 예측에 휘둘리지 말고 당신들만의 선택을 하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되 누구보다 집요하고 긴장감있게 질문하여 끝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할 것.

두부 가게의 주인은 두부를 만들 뿐 돈가스를 만들지는 못한다고 말한 건 위대한 감독 오즈 야스지로였다. <씨네21>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위대하진 못하지만 그의 위대함을 끌어낸 창작에의 다짐이 우리에겐 지금 절실하다. 질문이, 바로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것이 허문영의 고맙고 절실한 요청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그들 각자의 잡지관(觀)

후배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집과 고정 코너를 뽑았다

고정 코너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논쟁의 최전선

<씨네21>의 마지막 페이지를 오랫동안 대변해온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이하 유토디토)다. 그러나 굳이 이 지면의 화양연화를 꼽자면 당시 한국사회의 좌우를 대변했던 두 필자, 김훈과 김규항이 번갈아 글을 연재하던 허문영 편집장 시절이 아니었을까. 말 통하는 우파 김훈과 도발적인 좌파 김규항의 글은 유토디토 지면에 또렷한 색깔을 덧입혔고, <씨네21>은 때때로 이 개성 강한 두 필자의 글에 항의하는 이들을 위해 반론의 지면을 넉넉하게 비워두어야 했다.

특집 / ‘권말 특집’ 임권택과 <취화선> 사유의 공간은 무한대

권말 특집이라니? 지금 당신이 할 그 질문을 허문영 편집장 시절의 편집기자들도 하고 있었을 거다. 허문영 편집장의 요청에 따라 <취화선> 현장에서 임권택 감독, 배우, 스탭들과 100일간 동행했던 정성일 평론가는 <씨네21>이 요청한 150매 분량의 글을 훌쩍 넘긴 380매의 글을 보내왔다(이마저도 100매 정도 줄인 거란다). 마치 DVD 코멘터리를 구술 정리한 듯 세심하고 유려하게 기술한 정성일 평론가의 글은 230매를 쳐내기엔 너무 값졌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시 특집의 시작을 알리는, <취화선>에 대한 ‘권말 특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영화를 치열하게 사유하는 평자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던 허문영 편집장 시절의 <씨네21>은 그 뒤로도 종종 사유를 위한 비평의 장으로 지면을 기꺼이 내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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