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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살아 질문하라

<씨네21> 편집장 (2001년 12월~2002년 8월, 2002년 12월~2003년 7월) 현 영화의 전당 프로그램 디렉터 허문영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종종 이런 꿈을 꾸었다. 광고팀장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알린다. “이번주 광고가 3분의 1로 떨어졌어요!” 이 악몽은 편집장을 그만두고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편집장일 때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그만두었을 때는 내가 더이상 편집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피 말리는 일이다. 더구나 비평지와 연예지와 산업지의 성격이 혼합된 전대미문의 영화 주간지가 시장에서 오래 버텨낸다는 것은, 지금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매체를 창간했고 2년도 안돼 <씨네21>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조선희 초대 편집장의 공적은 아무리 치켜세워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종이매체의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시장에서 분투해온 후배 편집장들의 고뇌도 그에 못지않게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매체를 만드는 일과 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최상의 국물을 내는 객관적 공식이 있다면, 그토록 많은 가게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국물을 만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불안이 거둬지지 않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국물을 만들었던 국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종이매체의 성수기에 비교적 편하게 편집장을 하던 시기에도, 그 고민은 멈춰지지 않았다. 망할 각오를 하고서도 내가 믿는 좋은 국물을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의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하는 입맛에 맞추려 애쓰거나, 나로선 별다른 관심이 없는 다른 메뉴를 끼워 넣을 것인가.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쓸모가 없다. 우리 모두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지만, 어떤 경우에도 분열의 장력은 쉬는 법이 없어 우리는 끊임없이 비틀거린다. 누군가는 버텨내고 누군가는 결국 넘어질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모든 균형은 다르다. 나의 균형점이 그의 균형점이 되지는 않는다.

많은 영화매체들이 그렇게 애쓰다 사라져갔다. 전임 편집장의 말이 한 사람의 독자의 말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씨네21>이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내 삶의 잊을 수 없는 한 시기를 이 매체와 함께 보냈고, 지금도 기고자로 남아 있다는 개인적 인연으로부터 내 판단이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많은 곳에서 영화가 말해지지만, 영화에 대한 믿음을 질문하는 곳은 이제 이곳뿐이다. 한편의 영화의 재미있고 없음 그리고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에 그치지 않고, 영화만이 해왔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대답을 함께 고민하는 곳은 이제 여기 말고는 없다.

이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존재가치에 대한 질문이 오늘의 많은 독자와 관객에게도 여전히 중요한가. 그것이 <씨네21>을 만드는 사람들을 지금도 앞으로도 괴롭힐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 대답도 최종적 균형도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중적 질문을 그들이 포기하지 않기를 소망하는 것뿐이다.

더 많은 독자, 더 큰 상업적 성공이 한 사람의 독자로서의 내 관심사는 아니다. 질문을 버리지 않을 것, 그리고 어떡하든 살아남을 것. 그것 말고는 이 귀한 매체의 생일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