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고 있다. 이젠 정말 봄이 오려나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봄, 야심차게 ‘최신가요인가요’의 칼럼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다. 1년 전 칼럼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언급했던 노래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었는데, 이 노래를 그때 소개하지 말고 지금 소개했어야 했다. 최신가요인가요의 마지막 칼럼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노래가 또 어디 있겠나. 공교롭게도 따뜻한 봄을 맞아 <벚꽃 엔딩>이 다시 음원차트 순위에 진입했다는, 나로서도 참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1년, 참 빠르다. 마흔다섯번 최신가요를 소개했다. 적지 않은 수의 노래다. 겨우 1년 동안 연재한 칼럼을 비장하게 끝내려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마흔다섯곡의 목록을 보는 순간 1년이라는 세월이 느껴졌다. ‘노래’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간과 패키지로 기억되는구나, 싶었다. 칼럼을 시작하면서 ‘이 모든 최신가요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차곡차곡 귀에 쌓이고 그중에서 좋아하는 노래들을 걸러낸 다음 그 노래들을 듣고 또 듣고 시간이 흐르면 그 노래들은 구식가요가 될 것이다’라고 썼다. 다시 보니, 1년 전에도 글을 참 잘 썼구나, 싶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글을 쓰는 오늘이 마침 4월1일이라서….)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의 글 중에 ‘시간은 오래 남을 것만 가려낸다. 그리고 대개 시간이 옳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시간을 존중하는 쪽의 의견이고, 반대편에서는 다른 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 ‘시간을 견뎌내는 것들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반드시 시간은 무자비하다.’
시간을 견뎌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견딘다. 시간의 속도를 더디게 만들기 위해 필름 속에다, 컴퓨터 속에다 풍경을 담는다. 우리는 소설을 쓰고 읽으며 시간을 견딘다. 소설 속에 거대한 시간을 담아 시간의 처음과 끝을 파악하려 애쓰고, 시간을 되돌리고 빨리 흐르게도 하며 시간의 민낯을 보려 애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견딘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의 모습과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를 화면 속에서 보며 우리의 시간을 잊는다. 그렇게 견딘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견딘다. 아니, 이 말은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운다.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시간을 견딘다. 음악이야말로 가장 짜릿한 마법이다.
우리 옆에는 우리와 함께 무자비한 시간을 견뎌낸, 그래서 함께 살아남은, 동지들이 있다. 책과 DVD와 CD와 그림들의 형상을 한 무생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동안 이 칼럼을 응원하며 함께 시간을 견뎌준 친구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리히 캐스트너의 응용. ‘<씨네21> 편집장은 오래 남을 칼럼만 가려낸다. 그리고 대개 편집장이 옳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밝히자면, 저는 자진사퇴입니다. 하하하, 오랫동안 지면을 허락해준 <씨네21>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