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책이라. 이것은 사실 오답이 없는 질문이다. 스크린은 네모난 저수지라서, 웬만한 지류는 그리로 흘러 들어간다. 차라리 영화 보기에 일생 도움이 안되는 책을 묻는 편이 쉽다. 원작 없는 흥행영화를 급히 소설로 개작한 ‘시네마 문학’이 즉각 떠오른다. 이 책들은 대개 해당 영화를 보기 전에 읽으면 스포일러고,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읽으면 “원래 영화라서 다행이야”라고 한숨을 내쉴 확률이 70%를 웃돈다.
우선 연표와 지도책은 항상 긴요한 영화 참고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역시 지구라는 행성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분명 나를 극장으로 밀어가는 힘은 어린 시절 질릴 줄도 모르고 지구본을 하염없이 돌려보던 호기심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대학 진학 무렵 나는 역사를 전공으로 택했는데, 2, 3년이 흐른 뒤 내가 상상했던 역사학의 재미는 영화의 그것에 가깝다고 멋대로 결론짓고 영화 잡지에 이력서를 냈다. 그런데 최근 영화와 화법이 비슷한 역사서와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면 하워드 진과 앤서니 아노브가 엮은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이라는 사료집(史料集)이다. <링컨>과 <장고: 분노의 추적자> 개봉을 기념해 친구가 빌려준 이 책은,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미국 민중사>를 집필하는 동안 읽었던 주요 선언문, 서신, 기사, 연설문 등을 가려 묶었다. 도망 노예 수배 광고와 해방된 흑인이 옛 주인에게 쓴 분노의 편지가, 무하마드 알리의 반전 연설과 캄보디아 난민의 수기와 나란히 실려 있다. 미국사 상식을 얻으려고 책을 빌린 나는 결국 숱한 시점숏의 숲에 던져진 꼴이 됐다. 흡사 영화를 보는 동안 수많은 인물의 시점을 갈아타는 관객 경험을 글로 옮겨놓은 듯했다.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이 채집한 육성들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이 쓴 다음 문장을 실감나게 한다.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몽타주는 필름에 대해 죽음이 삶에 행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대중 장르 영화에 대해 말하거나 쓰면서 자주 불안하다. 무엇이 전형이고 상투인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을까? 정작 난제는 주류가 추구하는 오락성의 성분 분석 아닐까? 대중을 매료하는 이벤트, 광고, 프레젠테이션 등의 요건을 설명한 <금지된 장소 연출된 유혹>은 영화 창작자보다 영화의 설계를 이해하려는 관객에게 참고가 된다. 저자가 해설하는 유혹의 기법들이,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몸에 밴 문법일 가능성이 높은 반면 무심코 영화를 수용하는 관객으로선 간과할 만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명제들을 솔깃한 처방으로 받아들일지, 조작을 탐지하는 감별법으로 이용할지는 독자의 자유다. 단, “짜임새있는 타임라인의 구성은 다른 사람의 시간에 개입하는 모든 사람이 지녀야 할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의무다”라는 교훈만큼은 족자를 해서 걸어둘 만하다.
갓난아기 버금가는 무게의 <인체 완전판>은 의학스릴러나 좀비영화에 주석을 달기 위해서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막대한 양의 도판과 철두철미하게 건조한 문장은, 인간이 끔찍이 복잡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그 사실에 초연해지도록 유도한다. 두 감정 모두 훌륭한 영화가 내는 효과와 유사하다. 한편 영화는 (인간과 세계의) 증세다. 우리는 영화가 주는 정보로 고통과 희열을 유추한다. 몸의 징후를 예시하고 원인과 대응책을 간략히 서술한 ‘질병과 장애’ 섹션은 표면적으로는 단순 정보지만 영화 속 인물에 관한 자유로운 연상의 첫 번째 고리가 되기도 한다. 책장을 뒤지며 이러쿵저러쿵했지만 문득 시들해진다. 오늘날 영화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급히 읽어야 할 책은 별수 없이 슈퍼히어로 만화와 그래픽 노블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