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이 책을 내게 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몇년 전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뒤적이다가 만난 콘라트 로렌츠(1903∼89)라는 동물학자의 이름에 갑자기 이끌렸고(이상한 일은 가라타니가 그를 칭송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이며 1949년에 첫 출간된 <솔로몬의 반지>를 샀다. 그 책을 읽는 동안의 행복감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책을 사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것도 <솔로몬의 반지>가 처음이었다.
이 책을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건 콘라트 로렌츠가 위대한 인간이어서도 아니고 이 책이 인류의 위대한 지혜를 담고 있어서도 아니다. 사실을 말하면 로렌츠는 한때 나치의 지지자였고 그 사실을 끝내 시원스레 해명하지 않은 채 그의 생을 면밀히 조사한 전기 작가들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겨두었다. 그토록 동물을 사랑한 사람이 어떻게 나치즘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라는 수수께끼 말이다.
<솔로몬의 반지>는 동물의 행동에 관한 에세이다. 그는 동물들, 특히 회색기러기를 사랑했고, 이 책은 그 사랑의 기록이다. 내가 완전히 사로잡힌 것은 그 사랑의 방식이다. 나는 회색기러기를 사랑하지 않고 그럴 기회도 없었으므로 내가 그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 방식일 뿐이다. 로렌츠는 회색기러기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 그들이 먹고 쉬고 자는 호수 곁에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달이고 기다리는 길을 택했다. 그는 실험자가 아니라 관찰자였다. 로렌츠는 몇 가지 가설을 염두에 둔 인위적인 실험을 거부했고, 동물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끝없이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 미련한 방식으로 그가 받은 가장 큰 보답은 노벨상이라기보다 회색기러기들이 그에게 보여준 무한한 친밀감일 것이다.
“체질적으로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내가 한 것처럼 한여름 내내 기러기들 사이에서 기러기로 살라고 한다면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로렌츠는 덧붙인다. “도나우 강변의 풀밭에서 한떼의 야생 기러기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를 벌거벗고 야생동물처럼 기어 돌아다니거나 헤엄쳐야만 연구의 주요 부분을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학문이여!” 동물행동학 혹은 비교행동학이라 불리는 그 학문은 로렌츠에 전적으로 속한 건 아니지만, 그 방식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그 전에도 그 뒤에도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을 택한 사람은 없다.
로렌츠는 다른 책(<야생 거위와 보낸 일년>)에서 “감정과 결부된 인간의 지각이 아닌 객관적인 도구”로서의 카메라만이 ‘유기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솔로몬의 반지>가 감동적이라면, 그건 카메라 예찬론이 아니라 게으름과 기다림이라는 그의 방식에 있다.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은 헛된 훈계다.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끊임없이 계산하는 우리의 두뇌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상이 작은 말이라도 건네기까지 기다리는 것 외엔 없다. 우리의 지식 네트워크 안에 대상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 안에서 지속의 시간을 공유하며 대상을 바라보는 것. 이것은 우리가 존중해온 위대한 영화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로렌츠는 위대한 감독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냉소도 비관도 없이
또 다른 책 하나는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이다. 김성칠은 1913년에 태어나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0월8일 밤, 괴한의 총에 맞아 39살의 나이로 숨졌다. 그는 명민하지만 가난한 역사학자였고 몇권의 저서를 남겼다. <역사 앞에서>는 1993년이 되어서야 출간된 그의 6.25 일기다. 짐작과 달리 이 일기는 이상하리만큼 느긋하다. 격정과 분노, 흥분과 좌절, 공포와 불안은 온화한 문체에 깊이 잠겨 있어, 거의 평온하게까지 느껴진다.
김성칠에겐 콘라트 로렌츠처럼 사랑하는 대상을 게으르게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한 유럽인이 회색기러기 곁에서 느긋하게 헤엄치며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들과 만나는 동안, 이 한국인은 죽음의 공포 아래 인간의 가장 추악한 얼굴들을 대면해야 했다. 김성칠의 일기에서 보게 되는 놀라운 점은 이 끔찍한 상황이 이 젊은 학자의 정신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냉소도 비관도 없이, 서로 살육 중인 좌우 모두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지키면서 평온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김성칠은 콘라트 로렌츠와 마찬가지로 게으름과 기다림의 태도를 지녔던 것 같다.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이력서를 내라는 상부의 명령에 그는 ‘투쟁경력: 없음/ 정당 사회단체: 관계한 일 없음/ 숭배하거나 영향받은 인물: 없음’이라고 적어내고는, ‘이러다 반동으로 몰려서 처단받지나 않을까’ 걱정하다 이렇게 매듭짓는다. “한편으로는 설마 내야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인간이란 참 잘 되어먹은 동물인가 싶다.”(1950년 7월7일)
회색기러기의 호수를 거느린 대저택에 살았던 로렌츠의 게으름이 환경의 선물이라면, 김성칠의 이 놀라운 느긋함은 거의 선천적인 것 같다. 로렌츠가 나치의 빈 진격에 환호하러 달려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김성칠의 게으름은 훨씬 강인하고 고결한 게으름이다. 하지만 <역사 앞에서>를 읽으며 영화를 떠올린 이유는 <솔로몬의 반지>와 같지 않다. 나는 김성칠과 같은 인물, 정확히 말하면 그의 일기와 같은 것을 영화에서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그의 업적이나 비극적 죽음과 거의 무관하며, 사건과 행위와 성취 대신 인물의 태도가 서사이고 구조이며 동시에 윤리인 영화일 것이다. 그런 영화를 보고 싶다.
지도책을 뒤적이며
간단하게 언급할 마지막 책은 <고등학교 지리 부도>이다. 물론 꼭 ‘고등학교’일 필요는 없지만, 교과서여서 가격이 매우 싸다. 어쨌든 지도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적어도 2년에 한번 정도는 대형서점의 교과서 매장에서 개정판 부도를 사며, 간혹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지도 페티시즘이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는 것을 들었지만, 왜 내가 지도에 매혹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시선의 위치와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버즈아이뷰숏(bird’s eye view shot)은 싸구려영화에서도 늘 쾌감을 주는데, 지도를 볼 때에도 비슷한 쾌감이 있다.
다른 하나는 간접적인 것이다. 세르주 다네는 클레어 드니에게 “세상에는 역사적 영화와 지리적 영화가 있는데, 당신의 영화는 후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영화들에 두 요소가 함께 담겨 있다 해도, 이 구분은 의미있는 것 같다. 역사적 영화를 사건의 영화로, 지리적 영화를 장소의 영화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서부극이 미국의 건국신화라는 설명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서부극이 역사적 영화라기보다 지리적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든 다큐멘터리에서든 어떤 지역이 나오면 나는 지도책을 펼쳐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물론 그것이 그 영화를 말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확인을 한 뒤에 나는 왠지 그 장소의 공기를 더 잘 느낀다. 지도책은 웬만한 영화이론서보다 내게 더 요긴한 레퍼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