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우리가 해온 영화책 특집이 영화로 가는 지름길을 알리는 일이었다면, 이번 봄에는 수많은 갈래의 우회로로 들어서보고 싶었다. 언뜻 영화로 귀착되지 않을 것 같은 그 미지의 행로 위에서 영화와 더 애틋한 만남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씨네21>의 주요 필진 8인에게 영화와 무관해 보이지만 실은 영화를 보거나 영화에 관한 글을 쓸 때 영화책보다 더 요긴하게 활용해온 ‘비’영화책을 공개해달라 청했고, 20여권의 책이 모였다. 그 목록을 붙여보니 하나의 무질서한 독서 노선도가 만들어졌다. 어느 역사가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동물원에서 내릴 수도, 박물관을 구경하다 생소한 철학자의 뇌구조도를 입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잃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길을 잃기 위해 나선 여행이니까. 무언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잘 헤맬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믿는다면, 이 8인의 글을 지도 삼아 지금부터 조금은 무모한 지적 여정에 나서보자. 이상한 영화의 나라에 들어선 앨리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