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없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솔직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재테크와 성형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공유하며 권장하는 분위기는 또 다른 의미의 솔직함일 수도 있다. 가족 안에서의 갈등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문제를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소비하는 대담함은 신기할 정도다. 연예인은 공식석상에서의 모습뿐 아니라 사생활과 과거의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도 낱낱이 밝힐 것을 요구받는다. 대중과 언론이 작심하면 누구든 투명하게 탈탈 털어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 어떤 공직자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의해 ‘공인’으로서의 본분과 역할에 끼워 맞춰지는 스타와 프로그램들은 점점 얄팍해지거나 비슷하게 지루해진다. 흥미로운 것 이전에 비난을 피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천박함은 널리 용인되지만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면 금세 목이 날아간다. 솔직한 취향과 선명한 색깔을 만나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JTBC <썰전>은 이 와중에 튀어나온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본진인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던 김구라를 중심에 놓은 이 토크쇼는 오로지 이슈에 대한 ‘말의 맛’만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심지어 1부 ‘썰전’은 김구라, 정치평론가 이철희 소장에 ‘전 의원’이라는 호칭은 구차해 보여 싫다고 스스로 밝힌 강용석 변호사 등 출연진 세명이 컴컴한 스튜디오에서 탁자 하나 달랑 놓고 30분 동안 떠드는 게 전부다. 그런데 딴지라디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TV 버전 같은 분위기의 이 수다판은 꽤 재미있을 뿐 아니라 정치에 큰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눈높이를 맞춰준다.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웠던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에 대해 총리가 법조인 출신이면 비서실장으로 또 법조인을 뽑기는 어렵고 임기가 3년여 남은 현직의원은 부담스러워하니 ‘전’ 의원 중에 고를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거라는 분석이나, ‘장관이 실세면 부처 직원들에게 좋은 이유는 중대장이 육사 나오면 사병이 편한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는 낯선 이슈여도 직관적으로 와 닿는다. 북핵에서 김정은 국방위원장 부인으로, 서로의 이상형 연예인으로 두서없이 흘러가는 아저씨들의 수다도 회식 옆자리가 아니라 멀찍이 TV 앞에 앉아서 지켜보기엔 나쁘지 않다.
각종 대중문화 이슈에 대해 다섯명의 패널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2부 ‘예능심판자’ 역시 뻔한 옴부즈맨 프로그램이나, 자사 프로그램 홍보 및 일차원적 가십 소비 외에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연예정보 프로그램보다 훨씬 흥미로운 시선을 드러낸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의 현재 위상을 비교하며 거주 지역과 배우자의 학벌까지 게시하는 방식은 김구라로 대표되는 속물성을 굳이 감추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필드에 대해 주관적이고 비교적 솔직한 입장을 취하는 패널들의 발언에는 입에 발린 소리가 드물어 좋다. KBS <달빛 프린스>의 부진에 대해 “MC 대부분의 취미는 골프와 당구인데 왜 취미가 독서인 나를 부르지 않았냐”고 절규하거나, 리얼 버라이어티 조작 논란에 대해 “내가 재미없는 이유는 너무나 정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과장을 원한다”며 틈나는 대로 깔때기를 대면서도 은근히 예리한 분석을 내놓는 이윤석의 자폭성 토크도 의외로 매력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 채널을 넘나들며 평가하는 와중에 눈에 보이는 연예인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판을 까는 제작진의 전작과 장기 등 인기 비결을 짚어내는 깊이 역시 어지간한 연예 기자보다 나아 보인다. 그러니 박지윤과 홍석천이 ‘나쁜 남자’의 매력에 대해 공감하고 김구라가 “(연예인들은 음주 트윗)하지 말고 혼자 운전하면서 욕하면 돼”처럼 주옥같은 멘트를 던지는 동시에 “일반 시청자에게 13번부터 18번까지는 그냥 하나의 채널”(이윤석)이라는 냉정한 자체 평가를 내리는 이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요즘 가장 앞서가는 예능인지도 모르겠다. 지상파는 분명 좀더 긴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