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호프집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는데 70년대 록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두들기거나 흥얼대다 각자 좋아하는 밴드에 관해 떠들게 되었다. 레드 제플린을 필두로 딥 퍼플이나 레인보우, 지미 헨드릭스, 비틀스, 롤링 스톤스까지. 여기까진 좋았다. ‘록의 기원이 뭐냐’라는 질문이 나오기 전까진. 한 사람은 그 기원이 블루스에 있다 하고, 또 한 사람은 재즈에 있다고 서로 박박 우겨대다가 분위기가 제법 험악해졌다. 나로선 도대체 그 따위가 왜 중요한지 알 수도 없거니와 누구 편을 들기도 애매해 지켜만 봤다. 사실 블루스나 재즈나 결국 흑인음악 아닌가? 거기에 백인들의 컨트리 음악이나 포크가 조금 섞인 거고. 하긴 그까짓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랴’마는, 문제는 서로가 자신의 생각만 정답이라고 믿고 우기는 아집과 독선이었다. 마치 와우각상쟁, 그러니까 달팽이 뿔 위에서 하는 싸움질처럼 무의미해 보였다.
그러다 참다 못한 다른 이들이 화제를 슬며시 틀면서 겨우 일단락되는구나, 하는 찰나 또 다른 말시비가 붙었다. 오늘 정말 무슨 날인가 보다. 이번엔 거창하게 예술. 그것도 예술을 함에 있어 기술 혹은 형식에 관한 문제였다. 한 사람은 그 어떤 예술이든지 간에 기본적 구조와 형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다소 고전주의적인 의견을 가진 반면, 아까 재즈야말로 록의 기원이라고 핏대 올렸던 이는 예술에서 정작 중요한 건 형식이나 기술 따위가 아니라 개개인의 감수성과 열정이라고 하면서 또다시 기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매우 중요하고 흥미롭기도 한 얘기인 듯싶어 한동안 잠자코 들어봤다.
예를 들면 이런 얘기다. 여기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음악이야말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굳게 믿는 청년이 있다. 그런데 이 친구에겐 불행하게도 박자나 음감에 대한 감이 별로 없다. 게다가 아무리 연습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럼 이 친구는 그가 가진 음악에의 뜻을 꺾어야 할까? 기본을 논하는 이는 일단 자기가 하고픈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구분이 돼야 한다며 ‘박치’, ‘음치’인 사람이 음악을 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다, 고 주장한다. 일찍 포기할수록 좋단다. 반면 다른 이는 “웃기시네. 전혀 아니거든요. 모든 건 마음에 달렸지요. 자신의 의지나 열정이 중요하지 재능 따위는 노력으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어요. 오히려 그런 어려움이 있기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을 해내지요”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입이 근질거려 그 판에 슬쩍 끼어든다.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형식이나 스타일이 아닐까요? 게다가 제가 생각하는 재능은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거든요. 언젠가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처럼 ‘나이 들어서까지 얼마나 지속적으로 열정을 투입할 수 있는가’가 진짜 재능인 것 같아요.” 아이고, 근데 괜히 껴들었다 싶다. 시골 호프집 분위기가 썰렁해지면서 다들 술맛들이 영 안 나는지 술자리는 일찍 파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남편과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서로 못다 한 말을 토해낸다. “무기로 따지자면 재능과 기예란 ‘총’ 같은 것이고, 의지와 열정은 ‘칼’ 같은 게 아닐까? 얼핏 보기에 총이 훨씬 위력적인 것 같지만, 쓸모로 따져보면 칼이야말로 총을 압도한다고.” 남편의 말에 내가 나름 박자를 맞춘다. “그럼, 그럼. 박자 좀 무시하고 음정 좀 안 맞으면 어때? 헨리 밀러 말마따나 중요한 건 입을 벌리고 노래를 한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