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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 스토리에 대한 발언권만은 보장받고 싶다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3-03-29

<퇴마록 외전> 출간에 이어 <퇴마록> 영화화 준비 중인 이우혁 작가

한국형 판타지 문학의 효시. 누적판매량 1천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 시리즈. <퇴마록>의 등장은 비단 잘 팔리는 책 한권 정도가 아니라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넓힌 일대 사건이었다. 이른바 퇴마록 세대 이후 장르 문학이 쏟아져나왔고 판타지에 대한 저변이 확대되었다. 그 뜨거운 팬심은 2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하긴 악몽 같던 영화 <퇴마록>의 충격에도 견딘 그들 아닌가. 3월13일 <퇴마록>을 기억하는 이들의 심장을 달굴 소식이 전해졌다. <퇴마록>이 12년 만에 <퇴마록 외전>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우혁 작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퇴마록>의 3부작 영화화 계획까지 밝혔다. 흥분한 팬들은 희망이 뒤섞인 상상을 쏟아냈고 영화가 곧 만들어질 것처럼 들썩이고 있다. 과연 영화 <퇴마록>은 ‘원작 파괴자’라는 악명을 딛고 다시 한번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한달음에 이우혁 작가에게 달려갔다.

-홈페이지에 <퇴마록>을 영화화하겠다는 글을 올리자마자 난리가 났다. =여기저기서 어떻게 된 일이냐며 전화는 오지, 포털에 기사는 쏟아지지, 말 그대로 난리였다. 이렇게 <씨네21>에서도 연락이 오고. 나도 반응이 이 정도로 폭발적일 줄은 몰랐다. <퇴마록 외전> 작업을 막 마치고 정리하는 기분으로 간단한 소감을 적은 것뿐이었는데. 그것도 술기운에. (웃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퇴마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아닐까. =20년 전부터 봤던 책을 아직도 이렇게 기억해준다는 건 정말이지 감사하단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솔직히 <퇴마록>에 관해 다시 쓰면 좋아할 독자들이 있을 거라 어느 정도는 기대했다. 그간 신작을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차일피일 미루긴 했지만 언젠가는 써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94년 정도에 본편 내용에서 조금 떨어진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신에 잠깐 올린 적이 있는데 반응이 무척 뜨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이건 언제가 됐건 한번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건 몰라도 독자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게 언제가 됐건.

-그러고 보면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시리즈가 많은 편이다. =내가 워낙 성질이 급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라. 시작은 했는데 아직 마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잔뜩 있다. <파이로 매니악> <바이퍼케이션>은 물론이고 지금 쓰고 있는 <쾌자풍> <고티마> 다 마찬가지다. 시간과 조건이란 변수가 있긴 하지만 반드시 끝낼 생각이다. 출판사 분들이 들으면 또 기겁을 하겠지만. (웃음)

-책을 끝까지 낸다는데 그게 왜 기겁할 일인가. =예를 들어 <고티마> 같은 경우 아직 2권밖에 나오지 않아서 많이들 오해하고 계시지만 실은 굉장히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다. 줄이고 줄여서 대략 40만년의 역사? (정색하며) 농담이 아니다. 처음 <고티마>를 썼을 때 서구의 판타지를 흉내내고 있다느니 어린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쉽게 쓰고 있다느니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하지만 어떤 소설을 쓰더라도 독자의 눈치를 살피며 쓴 적은 없다. 또 그 배경이 판타지든 픽션이든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들. 그러다 보니 판타지의 세계관이 오히려 더 어렵더라. 판타지와 현실세계의 접점을 찾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두꺼운 책으로 8권 이상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미 결론은 나와 있다.

-놀랍다. 늘 결말을 생각하고 작품을 쓰는 편인가. =물론이다. 디테일은 채워가는 거지만 큰 흐름에서의 결론은 쓸 때 이미 구상해놓는다. 많은 분들이 또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퇴마록>의 세계관에 관해서인데, 국내편을 쓸 때부터 혼세편, 말세편을 생각하고 썼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이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고 오래 쓰기도 해서 잘 믿기지 않는가 보다. 혼세편, 말세편을 쓸 때는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며 협박도 많이 받았다. 제대로 쓰라며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게 처음부터 구상했던 결론이고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었을 때는 모든 논란과 의심이 잠잠해지더라. 결국 내가 옳았다는 걸 작품으로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뭐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글쟁이는 글로 말을 하는 거지.

-<퇴마록 외전> 발표와 함께 <퇴마록> 영화화에 대해 언급했다. =말 그대로 언급이고 구상이다. 제작, 투자는 물론이고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혹여 내 발언이 무조건 내 마음대로 만들고 전체를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처럼 비칠까봐. 벌써부터 몇몇 분들은 이우혁이 감독을 해야 한다는 둥 누구를 캐스팅하라는 둥 말들이 많다. 지나친 관심은 간섭이 될 수 있으니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 다들 선의에서 하는 얘기라는 걸 잘 아니까 더 곤란하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대로 된 <퇴마록>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는 것뿐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전체적인 세계관과 틀, 그리고 자신감이다. 이젠 <퇴마록> 영화화 작업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이전에는 자신감이 없었다는 말인가. =<퇴마록>을 영화화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국내, 세계, 혼세, 말세로 이루어진 구성 중 기계적으로 특정 분량만 뽑아서 영화를 만드는 건 무리가 있다. 이를테면 세계편을 묶어서 영화를 만들어보라는 식으로. 그런 식은 아니라는 거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건 국내편과 세계편을 한데 묶어 완전 압축한 다음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방법이다. 그 구상과 전체적인 밑그림을 완성하는 데 1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봐도 좋다.

-줄거리, 스토리 부분의 참여를 보장해달라는 건 그 때문인가. =사실 그간 숱한 제작사에서 찾아왔었지만 제대로 작품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스토리에 대한 발언권을 보장받고 싶다는 거다.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누구도 나만큼 <퇴마록>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나. <퇴마록>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인물의 인상이 중요한 이야기다. 아직도 팬들은 현암과 준후, 박 신부를 또렷이 기억한다. 심지어 중간에 영화 <퇴마록>으로 한번 그렇게 처참하게 말아먹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힘있는 캐릭터들이다. 게다가 <퇴마록>의 시대배경은 이미 과거다. 캐릭터의 인상은 고스란히 남기되 시대는 바뀌어야 하고 이야기는 새로워야 하는 양립 불가능한 조건들이 산재해 있다. 설령 셰익스피어를 데려온다고 해도 그 작업만큼은 나보다 못할 거란 말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못하는 걸 뚜렷이 구분하는 사람이다. 내 역할은 전체적인 틀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대한 조언을 해주는 거다. 해줘야만 한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있는지라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98년 만들어진 영화 <퇴마록>은 직접 봤나. =(손사래를 치며) 그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다. 한마디로 악몽이다. 하나만 예를 들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월향검(극중 현암이 사용하는 무기)에 대한 스케치만 300장 넘게 그려줬는데 나중에 들은 바로 미술 스탭은 그 그림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더라. 영화에서 말도 안되는 월향검의 모습을 봤을 때의 심정은 참담했다. 호되게 당하고 많이 배웠다. 이른바 ‘업계’라는 곳이 얼마만큼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도 알게 됐고.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이런 구상을 이렇게 직접 말할 수 있을 만큼.

-특별히 염두에 둔 감독이나 배우가 있나. =없다. 있어도 이야기할 수 없다. 일단 이야기를 꺼내면 그에 맞춘 편견이 생기지 않겠나. 내가 원하는 요소는 시나리오에 이미 들어 있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한번 글쟁이는 글로 이야기하는 법이다. 그리고 원래 구상을 할 때 인물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하지 않는다. 가만 생각해보라. 내가 언제 현암, 준후, 박 신부의 얼굴을 묘사한 적 있던가. 그들의 얼굴은 늘 비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구체적인 어머니의 얼굴이 없어도 그 느낌은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다. 상상을 시각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내게 그 일은 차라리 전체 그림을 조망하는 자유연상에 가깝다. 특정 시점으로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모든 것이 연결된 정황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할까. 매 장면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 안에서 특정 사건을 끌어와 글로 옮겨쓸 뿐 머릿속에는 이미 모든 장면과 시간이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게 내 작업 스타일이다.

-천재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특별히 배워서 하는 게 아니니 그럴지도? (웃음) 취미가 잡다하다. 뭐든 관심을 가지면 끝까지 배워야 직성이 풀린다. 음악 관련 글도 썼고 연극도 해봤고 익명으로 인터넷 카페 운영자도 했었다. 집에 가면 밀리터리쪽 수집품도 잔뜩 쌓여 있다. 내가 얼마나 이것저것 많이 하고 돌아다니는지 알면 아마 다들 놀랄 거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은.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해야지. 자부하건대 나는 성실한 작가다. 요약하자면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사람? <퇴마록> 초기에 썼던 글들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많이들 기억해주지만 <퇴마록>은 내 최고작이 아니다. 나의 최고작은 언제나 최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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