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온도>는 3년 사귄 사내커플 동희(이민기)와 영(김민희)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 과정에 무수한 감정들이 쌓인다. 사랑에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내 얘기 같다. <연애의 온도>의 매력은 이처럼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다. 남녀의 심리, 연애의 공식에 통달하지 않고선 쓰기 힘든 시나리오다. 노덕 감독은 6년 넘게 <연애의 온도>를 품고 있었다. 서울예술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지구를 지켜라!>의 스크립터로 영화 현장을 경험했고, 단편 <마스크 속 은밀한 자부심>으로 연출 실력을 인정받은 노덕 감독과 아침부터 연애 얘기를 나눴다.
-이름 때문에 남자로 오해 많이 받을 것 같다. =인터넷 보니까 내가 70대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는 글도 있더라.
-<연애의 온도>가 데뷔작이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였나. =그 반대였다. 난 그다지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연애의 온도>는 장르로 접근한 게 아니라 인물로 접근했다.
-처음 떠올린 인물은 누구였나. =장영이란 캐릭터로 시작했다. 애인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여자 이야기, 처음엔 그 설정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나도 모른 채 툭 시작했다. 보통은 대강의 이야기를 생각한 뒤 시놉시스를 쓰고 뼈대를 잡아나가는데 <연애의 온도>는 그렇지 않았다. 이별한 여자가 집에 왔다. 그다음엔? 그다음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이야기를 붙여갔다.
-<연애의 온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게 언제쯤인가. = 2006년, 2007년쯤이었다.
-중간에 시나리오 버전도 많았겠다. =처음엔 대학생 커플이 주인공이었다. 여주인공은 대학 4학년이고 남자주인공은 군대 갔다온 복학생이었다. 연애담보다는 성장담에 가까운 얘기였다.
-결국 대학생은 은행원이 됐고, 캠퍼스 커플은 사내커플이 됐는데. =대학생 버전을 완성했을 때 영화사랑 제작 얘기가 오갔다. 촬영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엎어졌다.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일기 쓰듯이 만들어간 작품이라 제작이 무산됐을 때 힘이 쭉 빠졌다. 그러다 스릴러영화를 쓰게 됐다. 다른 데 눈을 돌리니까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더라. 그때 지금의 설정들이 만들어졌다.
-사랑 앞에서 물불 안 가리고 행동하는 동희는 민폐 캐릭터, 밉상처럼 느껴진다. =동희는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 여성 판타지가 담겨 있는데, 개인적으로 동희 같은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특별히 동희가 민폐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희는 자존심을 버려야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행동들이 ‘난 널 아직도 사랑해’라고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영이는 자신이 더 노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영이는 피해자가 아니고, 동희도 가해자가 아니다. 자기가 더 노력한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로 하여금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게 관계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본다. 동희는 애처럼 행동할 때도 있지만 솔직하고 성숙하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연애의 온도>가 자기반성적 영화라고 했다. =연애를 하면서 나 자신을 많이 챙기려 했던 적도 있고, 관계 자체에 솔직하지 못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헤어진 남자친구들에 대한) 일종의 사과문이다. (웃음)
-현장에선 뜻대로 일을 잘 풀어간 편인가.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짧았다. 혼자 준비한 시간은 길었는데 스탭들과 영화를 공유하기엔 시간이 짧았다. 시나리오를 오래 썼다는 게 내게는 독이자 약이었다. 이야기를 실체화하는 과정에서 고착화된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또 현장에서 수정을 많이 했다. 상업영화 현장에선 좀 위험한 일인데,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연출을 하려고 했다. 이 영화엔 그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탭들이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속으로 ‘우리 영화 산으로 가는 거 아냐’ 그랬을지도 모른다. (웃음) 그럼에도 내 뜻대로 밀고 나간 부분이 많다. 영화를 만들 땐 준비한 것을 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보여줘야 되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런 공감대가 형성돼서 어느 순간 서로를 믿고 갔던 것 같다. 현장에서 굉장히 행복한 신인감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