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어떤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영화적, 정치적, 사회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1984년 7월 7~8일, 국립극장 실험무대에서 ‘작은 영화를 지키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제1회 작은 영화제’가 열렸다. ‘작은 영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작은 영화의 사회적 기능과 영화 소집단의 활성화 방안’을 토론하기 위한 행사였다. ‘작은 영화’라는 개념을 통해 기존의 단편영화, 소형영화, 실험영화 등의 용어를 폐기하고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새로운 개념을 통해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영화’는 광의적으로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 미래 지향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열린 영화를, 협의적으로는 큰 영화(35mm영화)와 규격상으로 구별되는 16mm, 8mm영화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작은 영화’의 상식적 해석이다.
뜬금없이 과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날 ‘작은 영화’라는 말이 30년 전 처음 제안된 것과 달리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어떤 의미였든 그것이 현재의 용법을 제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 이 말은 너무 남발되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작은 영화’라는 말을 사용한 것들을 보면 “제주 43 사건을 그린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작은 영화가 보여주는 큰 울림을 선사한다”(<한국일보>, 2013년 3월4일)처럼 독립영화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고, “한파를 이기는 열편의 작은 영화들”(‘텐아시아’, 2012년 12월14일)처럼 해외 예술영화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런 용례가 일반적이지만 가끔은 “<범죄소년>-<돈 크라이 마미> 등 작은 영화 어디서 봐야 하나?”(<일간스포츠>, 2012년 11월22일)처럼 독립/예술영화가 아닌 영화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며, 심지어 “한국영화 3~4개월 간격 1천만 관객 대박 행렬”(<연합뉴스>, 2013년 2월23일)처럼 대규모로 개봉된 <7번방의 선물>을 작은 영화라고 지칭하는 경우까지 있다.
각 기사에 등장하는 ‘작은 영화’라는 말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저예산영화나 배급 규모가 작은 영화를 이르는 말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작비나 배급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혹은 적은) 규모의 영화를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런 것까지 부정적으로 보기 어렵고, 언급되는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임에는 분명하기에 뭐라고 토를 달기 애매하기는 하다. ‘절대적으로 큰’ 영화가 아니라면 모두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다. 이래서는 ‘작은 영화’라는 말이 지시하는 의미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공유되는 바 없이 맥락없이 남발되다보니 관객이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한 <남쪽으로 튀어>를 ‘작은 영화’라고 이해하는 상황까지 종종 발생한다. 단어 선택을 할 때 좀더 사려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
언론 등에서 ‘작은 영화’라는 말을 쓰는 것은 의제 설정 등을 위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책 당국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은 문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행하는 간행물에서도 종종 ‘작은 영화’라는 말이 등장한다. 맥락상 이해는 가능하지만 정책을 위해 적절한 말은 아니므로 남발해서는 곤란하다. 제작비의 범주라면 저예산(혹은 초저예산)영화로, 배급의 범주라면 소규모 개봉 등 명확하게 이해 가능한 말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
독립영화쪽에서도 ‘작은 영화’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장에서 소외된, 혹은 불이익을 당하는 영화’라는 의미 등으로 ‘작은 영화’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런 경우라면 좀 길더라도 그렇게 설명하는 편이 낫다. 제작비나 배급은 작을지 모르겠지만, 해당 영화 자체가 작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상수, 김동원, 홍형숙, 전규환의 영화가 <도둑들>이나 <어벤져스>보다 절대 작지 않다. 외려 훨씬 큰 영화적, 정치 사회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 친근함을 주기 위함이나 겸손의 의미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축소시키는 듯한 말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은 영화’와 가장 유사한 개념인 소형영화는 법적 정의가 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16mm 이하의 필름을 사용하여 제작한 영화 및 1/2인치 이하의 전하결합소자 카메라로 제작하거나 1920×1080픽셀 미만의 해상도로 제작한 디지털영화를 ‘소형영화’로 규정하고 있다. 참고로 ‘단편영화’의 법적 정의는 상영시간이 40분이 넘지 않는 영화이며, 독립영화에 대한 법적 정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