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우 김보성과 이종격투기계의 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출연하는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이 개봉 확정되자, 인터넷은 형님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동준과 스티븐 시걸 이후 최고의 조합’, ‘기저귀 챙겨 가서 봐야 할 영화’ 등의 찬사(?)를 받으며 일부 관객층에 나름대로 높은 기대감을 얻었던 이 영화는 수정작업을 거쳐 근 3년 만인 3월14일,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김보성은 종래의 다소 코믹했던 이미지를 벗고, 치명적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한국의 국정원 요원 장현우 역을 소화해냈다. 힘든 3년 동안의 촬영 뒤 약간은 차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여전히 파이팅이 넘쳤다.
-어떻게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나. =우연히 이종격투기 경기장에서 표도르 한국쪽 매니저를 만났는데, 영화를 한편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한국 첩보원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내용도 있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부탁해 읽어봤다. 감독이 한국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딱 들더라. 앞뒤 안 보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럼 한국인 캐릭터 장현우는 원래부터 시나리오에 있던 인물인가. =사실 원래 영화의 배경이 한국이었다. 그런데 기획 단계에서 한국보다는 밀림이 있는 동남아가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 중도에 촬영지가 바뀌었다. 그래도 표도르 한국쪽 매니저가 러시아에 태권도를 전파시킨 분이라, 애국심도 있고 해서 계속 강하게 어필해서 장현우라는 캐릭터는 살아남았다.
-대역 없이 모든 액션을 촬영했다. 촬영 때 겪은 고생에 관해 이미 소문이 파다하다.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보다 정말 많이 외로웠다. 혈혈단신으로 갔기 때문에 에이전트가 있는 것도 아니라 언어문제로 많이 고생했다. 스탭들이 워낙 여러 나라에서 모였기 때문에 심지어 감독의 의사조차 제대로 전달이 안됐다. 현장에 카레이스키(고려인) 통역사가 있긴 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더라.
-위험한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위험한 장면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유리창을 깨부수고 뛰쳐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액션 연기용 유리가 없어서 진짜 유리로 했다. 진짜 유리. 무술감독도 위험하니까 발로 차고 나서 옆으로 밀고 나가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냥 하겠다고 했다. 감독도 내 편을 들어줘서 결국 내 방식대로 찍었다. 근데 다 찍어 놓고 나서 편집했더라. (웃음)
-가장 우호적이었던 동료는 누구였나. =단연 야킴추크 감독이다. 촬영 전에 술자리를 가졌는데, 러시아 사람들이 술 정말 잘 마시지 않나. 나도 한국의 강한 면을 어필하려고 그가 무지막지하게 먹는데 똑같이 따라 마셨다. 그랬더니 나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친근하게 대해주더라. 나중에는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어줬다. 표도르는 사람이 사교적이지는 않아도 기본 태도는 우호적이었다.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는 눈빛만 교환해도 다 안다. 나를 “마이 프렌드, 마이 프렌드”라고 계속 불러주더라. 피차 짧은 영어니까 그 정도로만 얘기했다. (웃음) 마지막에는 모든 스탭들에게 호감을 얻었다. 매일 촬영장에 제일 먼저 나가서 제일 늦게 나왔으니까.
-카레이스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혹시 감독이 빅토르 최 때문에 한국을 친근하게 느낀 것 아닌가. =아, 맞다. 분명 그런 얘기를 했었다. “빅토르 최(80년대 소련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록 그룹 키노의 리더. 아버지가 한국계였다.- 편집자)는 러시아의 영웅이었다. 나는 김보성을 러시아영화의 빅토르 최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실제로 지금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준비 중인데, 출연 제의가 들어오기는 했다. 근데 빅토르 최 역할을 하려면 러시아어가 유창해야 하는데, 2년 동안 배웠지만 아직 너무 어렵다.
-다음 계획은. =도장 찍은 건 아직 없다. 일단 씨름영화 하나가 들어왔고, 팔레트픽쳐스의 박신규 대표가 (최)민식이 형과 한석규가 나오는 새로운 영화에 나를 끼워주겠다고 제의해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바뀌었다고 하더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이전에 공백기가 길지 않았나. 그간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내가 말로만 의리, 의리 하면서 너무 교만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도 했다. (기자의 손을 꽉 잡으면서) 천신만고 끝에 영화가 개봉했다. 대한민국의 애국심에 불타는 사나이들이 이 영화를 꼭 봐줘서, 진정한 사나이들의 의리가 불꽃같은 파이팅으로 번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