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신탁관리 정책은 애초의 정책적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으므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저작권과 관련해...
정부 정책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소수의 사업자에게만 사업 허가를 내줌으로써 독점적인 사업 수익을 보장해주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각종 지원금과 융자, 세제 혜택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방송, 통신 분야로, 짧은 기간 내에 소수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을 일으켜 세우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과 주요 기간산업들이 이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영화산업에도 이런 방식의 정책 추진이 이루어졌던 때가 있다는 것이다. 1961년부터 1984년 5차 영화법 개정 전까지가 그랬다. 1961년 박정희 군부는 5.16 직후 기존의 72개 군소영화사를 16개로 통폐합했고, 2년 뒤에는 다시 6개로 줄여버렸다. 이런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당시 신필름은 자사 소유의 촬영소에 스튜디오, 녹음실, 편집실을 갖추고 전속배우, 감독, 스탭 등 정직원만 300명이 넘는 초대형 스튜디오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명보극장과 배급체인을 연결함으로써 제작-수입-흥행(배급, 상영)을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도 완성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등록 영화사들이 비슷한 수순으로 몸집을 키웠다. 이렇게 소수의 영화사만이 한국영화를 제작하고 외화를 수입, 배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기에 이들은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업화 정책은 애초의 의도와 달리 실패한 정책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영화사들은 외화수입 편수를 더 배정받기 위해 한국영화를 날림 제작하여 제작편수만 늘리거나, 수출실적을 조작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런 산업구조가 20년간 지속되면서 메이저 영화기업이 육성되기는커녕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산업 구조 전체가 왜곡됐다. 특히 실제 영화를 제작하는 독립제작자들이 영화를 통해 수익을 거둘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제작 주체의 자기자본 부재라는 한국 영화산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시작된 역사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제작 중심의 튼튼한 메이저가 단 한개라도 유지됐었다면,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장황하게 한국 영화산업의 옛날이야기를 들춰낸 이유는, 좀 엉뚱하지만 이와 유사한 정책 상황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어서다. 현재 문화산업 분야에서 정부가 독점적인 사업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영역이 저작권신탁관리 부분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직능별 1개 단체에만 독점적으로 신탁관리 사업권을 내주고 있다. 신탁관리업체에 독점권한을 주고 규모를 키워서 개별 저작권자의 이해관계를 더 잘 대변하고, 저작물 이용도 더 활성화시키겠다는 게 그 목적이다. 전형적인 60년대식 기업화 정책인데, 역시나 애초의 정책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저작권자와 이용자는 뒤로 빠지고, 그들의 고혈로 관리업체의 배만 불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서태지 음악에 관한 소송으로 인해 또 지난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혐) 사태로 인해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분리신탁, 복수신탁 제도 등의 입법화가 필요하지만 별다른 후속대책이 없다. 영화계가 지난해 음저협 사태의 경험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 사안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고, 영진위도 이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해결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실에서 이 문제의 대책인 양 ‘저작권관리사업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문제해결의 핵심인 복수신탁, 분리신탁 제도에 대한 어떤 근거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기존 신탁관리단체의 권한과 독점적 지위를 확장시키는 내용들 위주여서 주의가 요구된다. 일례로 이 법안에 따르면, 계약약관, 저작권료 징수, 관리, 분배 규정 등의 핵심 규정을 신고만 하면 신탁관리단체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여기에 신탁관리를 1개 단체에 독점적으로 위탁하는 문광부의 지침이 결합될 경우, 기존 신탁관리단체의 전횡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