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장르의 명칭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대치동 서스펜스’나 ‘강남엄마 호러’가 어떨까 했지만 아무래도 광의의 표현으로 ‘한국형 교육 스릴러’ 정도가 무난할 것 같다. 지난해 JTBC <아내의 자격>에 이어 시청자를 오금 저리고 얼어붙게 만드는 드라마,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그녀들의 완벽한 하루>(이하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 얘기다.
<아내의 자격>의 서래(김희애)가 남편과 시부모에게 등 떠밀려 대치동으로 이사하며 무방비 상태로 초등학생 아들의 사교육 전쟁터에 뛰어들게 되었듯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의 수아(송선미) 역시 우연한 계기로 강남 상위 1%를 위한 명문 유치원에 딸 예린을 보내게 된다. 이미 <아내의 자격>에서 국제중 입시명문학원 레벨 테스트 신의 비장함에 압도된 바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는 유치원생의 삶 역시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겁에 질렸다. “여기 아이들 대부분 영어가 기본이고 중국어, 스페인어까지 하고 있다”며 발표회는 당연히 영어 연극이라는 귀띔에, “사립초등학교 가려면 피아노, 미술 기본으로 깔고 예체능 두세개 정도는 해야 한다”는 엄마들의 조언은 우아한 말투로 상식처럼 수아에게 전달된다. 다달이 200만원씩 원비를 지불하는 것도 모자라 연말이면 따로 돈을 모아 담임교사에게 명품 백을 선물하는 것이 당연한 룰로 작용하는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이는 아웃당하고, 엄마가 낙오되는 순간 아이 역시 따돌림을 당한다. 굳이 맞벌이를 해야 할 정도로 빠듯한 형편에 아이에게 올인하지 못하는 워킹맘은 애초부터 논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3학년 산수까지 선행학습 하느라 잠도 못 자고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며 공부에 매달리다 틱 장애를 얻은 아이 하진이나, “너네 집 몇평이야? 우리 집은 타워캐슬이고 우리 아빠 차는 벤츠에 우리 엄마 차는 1억이 넘거든?”이라며 친구들을 밟고 올라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 리나 등 어른들이 망가뜨려놓은 아이들의 세계는 경쟁과 질시로 가득하다. 괴기스런 한편 결코 낯설지 않은 이 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이질적인 부분은 아이들이 ‘하버드반’이나 ‘프린스턴반’이 아닌 ‘해바라기반’에 다니고 있다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는 겉으로만 평화로워 보이는 이 지옥도를 묘사하고 학벌주의의 노예가 된 어른들을 비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계층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파고든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교수 남편을 뒀음에도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며 아들 하진의 사교육에 매달 수백만원을 지출하는 경화(신동미)는 돈도 없고 빵빵한 부모도 없는 자신들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학벌뿐임을 안다. 그러나 “어쨌든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공부라도 잘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노동소득만으로는 아파트 전세금 마련하기도 빠듯한 사회에서 점점 힘을 잃는다. “요즘은 공부로 차별화도 안돼서 시켜봤자 나중에 취직도 못한다잖아요”라는 혜주(김세아)나 “우리 도훈이는 공부에 목 맬 생각 없어. 공부 잘해서 팔자 바꾸는 거 다 옛날 얘기다?”라는 미복(변정수)처럼 부유한 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제 학력은 그 자체로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궁극적인 권력이라 할 수 있는 재력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임을.
그래서 종종 생각한다. 아마도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에서 벗어나 상승하려 하거나 한번 튕겨져나온 계층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얼마나 인간을 피로하고 고통스럽게 하는가를. 그리고 그들이 속하길 꿈꾸는 바로 그 집단은, 그것이 ‘중산층’이건 ‘하이 소사이어티’건 간에 하나같이 견고하게 문을 닫아걸고 하류로부터의 유입을 막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러니 멸종되어가는 신데렐라나 개천에서 난 용이 되지 못할 바엔 무리하지 말고 차라리 ‘이번 생은 이 정도로…’를 주문처럼 외고 다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토끼반 출신 실업자 주제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살기 위해선, 다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