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 TV채널을 돌리다 KBS1 드라마 <광개토대왕>에 멈추면 신기하게도 늘 이마부터 턱까지 꽉 차는 정면 클로즈업 숏이었다. 사이즈와 각도 변화가 단조로운 장면이 거듭 반복되었으니 유독 기억에 남았겠지. 점치는 기분으로 일부러 채널을 돌려보던 어느 날인가는 무려 다섯명이 한 화면에 등장해 내쪽에서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광개토대왕> 이후, 좀 다른 의미로 클로즈업 숏이 눈에 띄는 드라마를 꼽자면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일 것이다. 많고, 예쁘고, 화사하다.
여주인공 오영(송혜교)의 클로즈업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목구비 중 어디 한 군데가 닮았다고 해서 자신이 ‘송혜교 닮았다’는 말을 지껄이는 자들은 저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할 것이다. 배우가 본래 미인인 까닭도 있지만 거의 모든 클로즈업이 아름다운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최상의 앵글을 찾은 것처럼 눈을 사로잡는다. 화사한 때깔은 장비와 기술인력 덕분이다. 카메라는 ‘알렉사 플러스’에 스텝 스크롤을 보면 디지털 색보정을 담당하는 ‘DI(Digital Intermediate) 컬러리스트’의 숫자도 상당하다. 그런데 넋을 잃고 보다보면 문득 이게 드라만가 CF인가 헷갈릴 때가 있다. 두 주연배우가 광고모델을 하는 의류와 화장품 업체가 PPL을 하고 있으니 광고가 맞긴 하지만 우선 그 점은 접어두고 <그 겨울>의 클로즈업이 이야기와 얼마만큼 긴밀하게 붙어 있는지부터 분별하고 싶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 겨울>은 일본 <TBS>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한다. 허랑방탕하게 살던 남자가 시각장애인 상속녀의 오빠라고 속이고 접근해 유산을 가로채려 한다는 것이 기본 설정으로, 원작의 주인공인 ‘신주쿠 가부키초 넘버원 호스트’ 레이지(와타베 아쓰로)는 여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사랑을 연기하는 데 능숙한 남자다. 상속녀 아코(히로스에 료코)의 목숨을 노리면서도 충실하게 ‘오빠 역’을 연기하는 레이지와 오빠의 거짓말에 ‘반응’하는 아코 사이의 서스펜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포착하는 원작 역시 얼굴 클로즈업 숏이나 눈, 입 등의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이 빈번하다. 원작의 매력 중 하나는 ‘연기하는’ 레이지의 표정에 균열이 생기는 찰나들이다. 레이지의 얼음 같던 마음이 연민으로, 연민이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은 레이지의 행동이 ‘더이상 연기가 아니게 된’ 순간에 당도할 때까지 연기 뒤편에 가려져 있다.
원작과 <그 겨울>의 차이가 이 지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나 육체적인 고통, 의심에 대한 불안, 공격적인 감정이나 매혹이 분주하게 스치는 얼굴. 오수(조인성)는 레이지에 비하면 연약한 껍질을 갖고 있으며 원작이 감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낸다. 레이지가 이따금씩 아코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접촉으로 오빠를 연기한다면, 오수는 자신의 얼굴 윤곽을 손으로 더듬는 오영의 접촉에 흔들리고 갈등한다. 설정은 오누이지만 남녀간의 긴장이 흐르고 여기서 오영의 클로즈업은 오수가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잊게 할 만큼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갖출 빌미를 얻는다. 남은 의문은 이들의 클로즈업이 뭔가 집념에 가까울 정도로 그렇게 뽀얗고 아름다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설정에 기대 조금 닭살 돋게 말하자면, <그 겨울> 오수의 클로즈업은 ‘직업이 포커 갬블러임에도 불구하고 숨기지 못하는 감정’을 좇는 것이다. 그리고 오영을 애처롭게 여기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오수는 그에 대한 의심을 끝낸 동생을 위해 ‘연기를 해야 하는’ 지점에 당도한다. 안간힘을 써서 욕망을 통제하는 6회, 이미 순정만화의 정서를 꿰뚫어버린 마당에 그림체가 아름답다고 의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개기름과 주근깨를 감추지 않는 원작을 무척 좋아하지만, 인정하게 되었다. 모공 따윈 필요 없어,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