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2편 <이노센스>(2004)의 포스터는 형편없이 망가진 여성 로봇의 모습을 보여준다. 헝클어진 로봇의 모습이 왠지 섬뜩하면서도 어딘지 성적으로 야한 느낌을 준다. 그 이미지의 원조는 아마도 독일의 초현실주의자 한스 벨머가 제작한 소녀의 인형이리라. 그가 제작한 인형은 나무와 금속으로 된 골격에 석고로 만든 몸통(torso)을 붙이고, 빗자루 손잡이로 만든 한팔과 두 다리에 금속 막대와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관절을 만들어 붙인 것이다. 그의 인형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학대당한 신체로, 거기에서는 죽음의 섬뜩함이 성적 판타지와 떼어낼 수 없게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폭력과 섹슈얼리티
벨머가 인형의 제작을 시도한 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어머니가 1931년에 베를린으로 이사 오면서 고향집에서 가져온 어린 시절의 장난감 상자였다. 그 안에는 타로 카드, 유리구슬, 인디언 복장 등 유년 시절에 갖고 놀던 온갖 잡동사니와 더불어 망가진 인형이 담겨 있었다. 장난감 상자 속의 이 망가진 인형은- 미래주의에서 유래하는 기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념과 결합하여- 그로 하여금 “해부학적 가능성을 갖는 인공의 소녀를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욕망의 발명에 버금가는 고도의 정념을 재창조”한다는 발상에 도달하게 해준다.
하지만 인형 제작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역시 삼촌 부부를 따라 카셀에서 벨머가 사는 곳으로 이사 온 사촌 여동생 우르줄라였다. 당시 15살이었던 이 아름다운 소녀는 벨머의 성적 환상을 사정없이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 나보코프의 <롤리타>(1955)가 쓰이지도 않았던 시대에는 10대 소녀를 성적으로 욕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 금기에 속했다. 그의 욕망은 결코 실현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이 좌절된 욕망은 소녀의 인형을 대하는 가학적 태도로 나타난다. 그 인형을 다양한 포즈로 촬영한 사진집은 물론 성적 환상의 원천이 되어준 그 소녀에게 헌정됐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언급할 만한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이듬해인 1932년 우르줄라의 가족과 함께 막스 라인하르트가 연출한 오펜바흐의 오페라(<호프만 이야기>)를 관람한 것이었다. 벨머는 거기에 등장하는 자동인형 올림피아의 모티브가 마침 자신이 품고 있던 예술적 관념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느낀다. 오페라의 원작인 E. T. A. 호프만의 단편 <모래 사나이>에서 자동인형 올림피아는 동시에 성적 욕망과 죽음의 섬뜩함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나타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프로이트는 호프만의 단편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그 유명한 ‘언캐니’(unheimlich)의 개념을 발전시킨 바 있다.
사진집 <인형>(1934)은 한정된 수량으로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었다. 거기에는 벨머가 제작한 최초의 인형을 찍은 10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에서 세 번째까지는 골격에 몸통과 사지를 붙여 인형을 조립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네 번째 사진은 마치 조립 이전의 프라모델처럼 완전히 해체된 부품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 이후는 이렇다 할 선형적 내러티브 없이 다양한 포즈로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배경으로 찍은 인형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형은 잔혹한 성범죄의 피해자, 아니 아예 토막 살인의 피해자처럼 보인다. 그는 왜 소녀의 신체에 이토록 끔찍한 폭력을 가해야 했을까?
인형을 훼손하는 이유는?
벨머의 인형이 갖는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정치적 관점에서 그의 인형 작업은 이상적 육체미를 선전하던 나치의 미학에 대한 저항으로 읽는 해석이 존재한다. 이 경우 인형의 훼손은 나치의 폭력적 승화(sublimation)에 노골적인 탈승화(desublimation)로 맞서는 저항의 몸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은 벨머가 인형을 제작하여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한 것 자체가 ‘나치 치하에서는 예술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벨머는 단호한 반나치주의자로, 파리 체류 중에는 레지스탕스를 돕다가 체포되어 독일인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형을 훼손하는 작업은 아득한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해묵은 관습이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따르면, 아득한 고대에는 늙고 병든 왕을 살해하는 관습이 있었다. 하지만 왕권이 강화되면서 왕의 살해는 점차 인형의 살해로 대체된다. 이 제의에서 인형은 물론 살아 있는 왕을 대리하는 노릇을 한다. 그 시절 인형들은 살아 있는 왕을 대신하여 절단되거나, 파괴되거나, 매장되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형은 아득한 과거로부터 이미 ‘죽음’의 모티브에 연동되어 있었던 셈이다. 애초에 파괴되고 손상되고 훼손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해석이나, 인류학적 해석은 벨머의 인형에 노골적으로 흐르는 저 ‘성적’ 뉘앙스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정신분석학일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인형의 훼손은 ‘항문기 사디즘’의 시기에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을,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를 상징하는 인형을 파괴함으로써 억눌린 성욕을 실현하고, 허구적으로나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향해 자학적으로, 부모를 향해 가학적으로 행사되는 폭력은 물론 은밀한 성욕, 죽음의 충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애너그램으로서 인형
벨머가 자신의 인형에 죽음의 모티브를 결합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된 것은 1938년 첫 번째 부인이 폐렴으로 사망한 것이었다고 한다. 1950년 벨머는 우니카 취른을 만나 재혼한다. 취른은 독일 문학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애너그램’(anagram)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애너그램이란 낱말 속 철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낱말을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취른의 애너그램과 벨머의 인형 작업이 서로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취른이 낱말을 해체하여 엉뚱한 순서로 재조립한다면, 벨머는 인형을 해체하여- 마치 인체의 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엉뚱한 구조로 재조립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벨머의 인형은 “조형적 애너그램”(plastic anagram)이라 할 수 있다. 취른의 문학적 애너그램이 낱말을 해체하여 재조립함으로써 그 속에 은밀히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의미를 드러내듯이, 벨머의 조형적 애너그램 역시 우리의 신체에 내재한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준다.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물론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분석을 요할 것이다. 벨머의 인형은 우리의 정상적 신체처럼 ‘통일’되어 있지 않고, ‘절단’되거나 ‘파편화’되어 있다. 이는 라캉이 말한 ‘거울단계’ 이전의 유아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갖는 느낌과 비슷하다. 여기서 인형에 투사하는 그의 가학적 욕망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의 손목에는 여러 번 면도칼로 자해한 흔적이 있었다. 그 상처를 공책의 행으로 삼아, 손목에 속눈썹을 칠하는 마스카라로 우니카 취른의 애너그램 시를 적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을까? 아무튼 거기가 그 시를 적기에 딱 어울리는 장소라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첫행은 ‘ROT WINDE DEN LEIB’. 문법적으로 비문이나 대략 ‘신체를 붉게 휘감아라’라는 뜻이다. 그 아래에는 물론 위의 열다섯 철자의 순서를 바꾸어 얻은 문장을 적어넣었다. ‘WIR LIEBEN DEN TOD.’ ‘우리는 죽음을 사랑한다.’
우니카 취른은 1974년 자살한다. 지금은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벨머-취른이라는 묘비명 아래 남편과 함께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