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품위있는 문장과 족집게 같은 비유로 아름다운 노래들을 소개해왔던 이 칼럼에 드디어 위기가 찾아왔다. 다른 노래들에 정을 붙여보려 해도 잘되질 않는다. 이러지 말자고 나 자신을 추슬렀지만, 쉽게 되질 않는다. 이러면 안된다고, 돌아온 샤이니도 있고, 섹시한 씨스타19도 있고, 귀여운 레인보우도 있고, 길쭉길쭉한 나인뮤지스도 있는데, 왜 하필 그들이냐고, 가수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멋없이 뚱뚱한 아저씨를 꼭 소개해야 하느냐고, 묻고, 되묻고, 마음을 다잡아보았지만 내 마음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형돈이와 대준이’에 빠져든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오래전부터 정형돈의 팬이었다. <개그콘서트>에서 ‘아하 그렇구나’를 노래할 때도, <무모한 도전>에서 심은하 헤어스타일로 소와 줄다리기를 할 때도, 그를 좋아했었다. 아마도 그를 좋아한 이유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심드렁한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막상 뭔가 맡기면 못하는 게 없는데 일단은 모든 일에 시큰둥하다. 통통한 몸매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싫어, 이걸 왜 해’ 하는 동작을 하고 있으면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요즘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이 눈알을 뒤집으며 정신줄 놓는 춤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정신줄을 놓고 만다.
정형돈의 개그는 대부분 좋아했지만 노래는 경우가 달랐다. ‘뚱스’와 ‘파리돼지앵’을 거쳐 ‘형돈이와 대준이’에 이를 때까지 그의 모든 노래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노래도 있었지만 어처구니없는 노래도 있었고, 장난이 너무 심해 금방 질리는 노래도 있었다. 이런 노래를 꼭 발표해야 하나 싶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정형돈은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다. 마음 한쪽으로는 그런 생각을 먹으면서도 어느샌가 정형돈의 노래를 듣고 있다. <올림픽대로>나 <안 좋을 때 들으면 더 안 좋은 노래>는 심지어 자주 듣는다. 정형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은 ‘형돈이와 대준이’인 것 같다.
‘형돈이와 대준이’의 새 앨범 《스윝 껭스타랩 볼륨1》 을 들을 때는 <인트로>부터 배꼽을 잡고 웃었다. 랩이라곤 하지만 라임은 별로 없다. 뇌를 정확히 거치지 않고 단순한 연상작용만으로 가사를 그저 내뱉을 뿐이다. <인트로>에서 ‘마더 파킹(주의: F워드가 아니라 P워드다), 엄마는 주차 중, 베이비, 엄마차 후방 카메라, 전면 주차 베이비, 우린 욕 안 해요’로 이어지는 가사들을 듣고 있으면, 이 사람들이, 도무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어지는 <꺼져>에서는 (키스 마이 애스가 아니라) ‘키스 마이 에스키모’를 외친다. 노래의 완성도를 떠나 저런 가사들을 진지하게 읊는 정형돈의 목소리만으로도 나는 완전히 무장해제된다. 낄낄대면서 정형돈의 목소리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따라 생각이 없어진다. 뇌가 청결해지고 뽀송뽀송해진다. 가끔 그렇게 뇌를 드라이클리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 드라이클리닝, 베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