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9월22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제5전시실 문의: www.moca.go.kr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감독 정재은)를 보고 정기용의 건축 못지않게 ‘전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 큐레이터와 생전의 정기용 선생이 벌이는 긴장과 벌어지는 대화의 간격은 대체 전시가 무엇이기에 몸이 성하지 않은 그를 고민하게 하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준비했던 전시는 그가 즐겨 쓰던 단어처럼 “근사했다”. 살아 있던 마지막 순간 그가 함께했을 일민미술관에서의 전시 <감응-정기용 건축, 풍토 풍경과의 대화>(2010년 11월∼2011년 1월)엔 정기용의 건축, 도면, 육성, 책 등 거의 모든 것이 숨쉬는 듯했다. 그가 대학생 때 그린 그림과 영상으로 기록된 대한민국 여러 지역의 건축물들이 그의 궤적을 보여주었다.
일민미술관의 전시가 정기용 자신이 본 정기용의 육성이었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림일기-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는 그가 남긴 아카이브에 다른 이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겹쳐져 있다. 그가 작고한 뒤 2년 동안 사람들이 느꼈던 그의 삶과 건축에 대한 감응, 여전히 건축물로 기능하는 유작들과 그의 생각들이 아카이브에 여러 겹을 더한다. 떠난 자의 허락을 일일이 받을 수 없지만 전시는 최대한 그가 남긴 자료와 걸어온 여정에 충실히 다가간다. 정기용 선생은 작고 직전 2만여점의 자료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전시는 그중 2천여점을 선별해 그의 건축이 새로운 아카이브이자 연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림일기’라는 명칭은 저서 <감응의 건축>에서 발췌한 것으로, 그림일기 쓰는 것은 그림만큼 많은 메모와 글을 남긴 그의 생전 습관이기도 했다. 건축가의 뛰어난 드로잉 실력을 볼 수 있는 도면들은 그가 살았던 하루하루를 반영한다. 집을 사회와 나를 이어주는 ‘관계의 시작’으로 보았던 그가 수년간 진행한 ‘무주 프로젝트’를 비롯해 ‘기적의 도서관’, ‘제주 4•3 평화공원’,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 탐구했던 도시와 주거 공간에 관한 스터디를 다시 볼 수 있다. 정기용의 아카이브가 있는 미술관에서 다시 상영되는 <말하는 건축가>는 지난해 봄 봤을 때처럼 아련할까. 3월9일엔 정재은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되며 4월엔 다양한 이들과 정기용의 건축을 살피는 대담회가 열린다. 컬러풀한 색채로 그려낸 건축 드로잉에서 그가 보고 싶었던 세계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