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일에 빠져 완전 허우적거리며 책도 못 보고 숨도 못 쉬고 살고 있다’고. ‘팀장이 간부 워크숍에 가서 겨우 문자할 정신이 났다’며. 요지는 이런 거였다. 선배는 회사를 그렇게 오래 다니며 어떻게 견뎠냐, 나는 죽겠다, 우얄꼬? 그때는 밥줄이 불안한 프리랜서 라이터로서의 마감이 한창이어서 대충 이렇게 달랬던 기억이 난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시키는 거 다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가끔 농땡이도 부리고 선배나 상사에게 징징거리며 앓는 소리도 하고. 자존심 따위 개나 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속에 먼저 회사를 그만둔 선배로서 내가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서 잠정적 실업자들을 위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언을 정리하게 됐다.
첫 번째, 일단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 해고되지 않은 사람들도 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좋다. 일에 밤낮 없이 파묻혀 지내며 회사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 됐다는 거다. 이제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는 박명수 명언이 통하는 시대라 그렇다. 실제로 현재 하버드대학의 비즈니스스쿨에서조차 그러한 유형의 직원은 비용과 생산성 면에서 기업에 위험한 존재라고 가르친다고 들었다. <속도에서 깊이로>를 쓴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워스가 그랬으니 믿지 못하겠거든 한번 읽어보길. 왜 성실함이 병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나? 일에 대한 강박관념은 스스로 우울증이나 암을 만들기도 하지만, 남보다 열심히 하거나 너무 잘하는 것도 동료들에게 일종의 민폐가 될 수 있다. 일은 이상이나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필요악 같은 거다(직장에서 일하면서 얼마나 많은 굴욕감과 비참함을 느끼는지 생각해보라!). 그러니까 적당히 해야 한다. 남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직장을 그만두거나 해고되고 나면 그다음에 뭘 하고 살아야 더 재밌게 살 수 있을지 이런저런 탐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챙기기 위해서도 적당히.
그다음으로 가장 절박한 것은 이 지구에서 더 간소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칼 융이 한 말이 있다. “나는 전기 없이 지내왔고, 벽난로와 스토브를 직접 피운다. 저녁이면 낡은 램프에 불을 붙인다. 흐르는 물이 없어 우물물을 퍼올린다. 정작을 패고 요리를 한다. 이렇게 소박한 행위는 인간을 소박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박해지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이나 <자발적 가난> 같은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가능하면 소박한 물건들로 더 적게 가지고 사는 법을 배운다면 사회적 격변에 있어도 상처를 덜 입게 된다는 거다.
세 번째, 일종의 취미 생활로 필요한 물건을 사기보다 직접 만들어 쓰는 즐거움을 경험해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일과 여가가 예전의 수공예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굶지 않고 건설적인 충동을 만족시키는 일 말이다. 그러니까 지배 계층이 인심쓰듯 던져주는 일거리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인생을 좀더 멀리 보고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서서히 구축해나가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