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
1. 하이엔드 헤드폰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휴대용 앰프. 일반 CD 이상의 음질을 경험하게 해준다. 2. 스마트폰, PC, MP3 플레이어와 연결하면 디지털 음원을 아날로그 사운드로 변환해주는 컨버터 역할을 한다. 아이폰으로도 원음에 가까운 음질을 즐길 수 있다는 뜻. 3. 휴대용 기기지만 휴대폰과 연결할 경우, 휴대하기 부담스러운 무게와 크기가 된다. 거의 모든 휴대 기기 액세서리가 공유하는 딜레마.
100% 쇼핑이란 완벽한 결혼과 비슷하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목표라는 뜻이다. 나는 한때 그렇게나 뜨겁게 지냈던 스마트폰과 얼마 전부터 느슨한 권태기를 겪는 중이다. 가상 키보드를 띄우고 하는 타이핑에는 여전히 적응이 안되고, 앱스토어를 드나드는 것도 더이상은 재미가 없다. 전화통화, SNS, 그리고 음악감상 정도가 이 똑똑하다는 기계를 가지고 하는 일의 전부이다. 그래서 더이상 쓰지도 않는 앱들은 다 걷어가도 좋으니 음질 개선이나 확실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런 이유로 그간 이 지면을 통해 고급 헤드폰과 이어폰을 숱하게 탐색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의심이 슬쩍 고개를 든다. 과연 헤드폰만 교체하는 정도로 충분할까? 카드 명세서를 받아본 뒤 지름신과 불태웠던 한달 전 밤을 후회하는 일 따위는 그만둬도 좋은 걸까? 소니코리아의 휴대용 헤드폰 앰프인 PHA-1 출시 소식을 들은 건 그때였다. 보도자료의 행간에는 내가 스마트폰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으며, 카드 한도도 아직까지는 남아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PHA-1은 헤드폰을 위한 액세서리다. 각종 오디오 제품과 연결했을 때 헤드폰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주는 앰프라고 하겠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기 모두와 호환이 가능하지만 진가는 후자와의 궁합에서 좀더 선명하게 읽힌다. 엄밀히 따지면 음악 전용 디바이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은 오늘날 가장 널리, 그리고 자주 쓰이는 음악감상 도구가 됐다. 문제는 음악만을 위한 기기가 아닌 만큼 음질에서는 포기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는 점이다. PHA-1은 플레이어 자체의 체질 개선을 유도해서 고급 헤드폰만으로는 메울 수 없었던 아쉬움을 해결해준다.
일단 96khz/24bit까지 사운드의 해상도를 끌어올려주는데, 이는 CD의 음질(44.1khz/16bit)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 혹은 PC와 연결했을 때 외장 DAC(Digital Analog Converter)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비교적 밋밋한 디지털 음원을 깊고 입체적인 아날로그 사운드로 변환해주는 것. 원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스마트폰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라 봐도 좋겠다. 소니는 최상급 부품으로 사운드 왜곡과 노이즈 발생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PHA-1은 바람났던 남편의 마음도 돌릴 구은재/민소희의 눈밑 점 같은 액세서리다. 그런데 그 점이 다소 크고 무겁다는 게 아쉽다. 220g짜리를 스마트폰에 연결하고 나면 <허트 로커>에 나오는 시한폭탄 같은 비주얼이 완성되기 때문에 슬슬 부담이 밀려온다. 54만9천원이라는 가격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점이 아니라 배보다 큰 배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원래 대부분의 쇼핑은 새롭고 보기 좋고 유용하지만 지금 당장 꼭 필요하지 않은 배꼽들을 수집하는 일이 아니던가? 결혼과 마찬가지로 쇼핑도 어느 정도는 미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