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3월10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문의: 1644-2003
연극 <에이미>는 딸을 가운데 둔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란 가족사를 통해 영국 현대사의 다양한 대립을 첨예한 문제의식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일관되게 이끌어나가는 것은 에이미의 엄마 에스메와 에이미의 남편 도미닉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지만, 실제로 공연을 보다 보면 이 작품의 두 가지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이 작품은 연극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연극의 본질적인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연극에 종사하는, 혹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강력한 힘으로 다가온다. <에이미>는 그 자체로 배우에 관한, 나아가 연극의 존재 가치에 대한 메타 연극이면서 동시에 연극과 미디어, 창작과 비평, 예술과 대중성, 고전과 현대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내포하고 있다.
극중 연극배우인 에스메와 연극을 혐오하는 영화평론가 도미닉은 ‘연극’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들의 논쟁에는 연극인이나 연극평론가가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거나 반대로 속이 후련해질 만큼 현대 연극의 현주소에 대한 뼈아픈 지적들이 많이 나온다. 작가 데이비드 헤어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자기 세계에만 빠져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려 들지 않고, 관객과의 소통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면서 현실적으로 고립되어가는 연극에 대해 마치 고해라도 하듯 자기반성을 쏟아놓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4막의 마지막 분장실 장면, 에스메가 자신의 모든 현실적 실패와 생활고를 짊어진 채 진지한 열정으로 준비하는 연극 무대는 어딘지 모르게 숭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 다 침묵 속에 이상할 정도로 순수해 보인다’는 마지막 지문은 에스메와 상대역 토비뿐 아니라 이 시대의 연극, 그리고 연극인 모두를 바라보는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느끼게 한다.
한편 무대에서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것은 역시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력이다. 특히 2010년 한국 초연 무대에 이어 이번에도 에스메 역을 맡은 윤소정은 이 작품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막에서 빨간 장미무늬 원피스를 입고 생기있게 등장한 뒤, 2막의 우아한 초록 드레스와 3막의 수수한 바지와 블라우스 차림을 거쳐 4막의 마지막 장면, 나이 들고 초라한 여배우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윤소정은 시종일관 특유의 매력과 존재감, 그리고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며 작품의 매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