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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웃기기, 저렇게 웃기기
2001-03-13

<일곱가지 유혹>의 감독 해럴드 래미스

<일곱가지 유혹> 공식 홈페이지

http://www.bedazzledmovie.com/

미스터 쇼비즈 해럴드 래미스 인터뷰

http://mrshowbiz.go.com/interviews/181_1.html

<고스트 버스터> 센트럴

http://www.gbcentral.com/

가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전혀 모르던 사실들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애플사에서 생산하는 컴퓨터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던 ‘매킨토시’가, 실은 부사나 홍옥처럼 사과의 한 품종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식품점 진열대에 써 있는 푯말을 보고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나면 ‘왜 애플사가 자사의 컴퓨터를 매킨토시라고 불렀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는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암기하는 데 익숙해, 무언가를 궁금해 하지 않게 된 자신의 모습이 싫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와 비슷하긴 하지만 자괴감보다는 오히려 재미를 안겨준 경험을 했다. 상황은 새롭게 장만한 DVD플레이어를 위해 구입한 <맨 인 블랙> DVD에 포함돼 있는 <고스트 버스터> 15주년 기념 DVD의 광고를 보고 있을 때 벌어졌다. <고스트 버스터>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캐릭터인 찐빵귀신을 보여주며 “<캐스퍼>가 나오기 전에…”로 시작해, 먹깨비를 보여주며 “<플러버>가 나오기 전에…”, 그리고는 고스트 버스터들을 보여주며 “<맨 인 블랙>이 나오기 전에…”라고 하면서 고스트 버스터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던 그 광고의 멘트에서 갑자기 ‘해럴드 래미스’라는 이름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고스트 버스터>의 감독은 아이반 라이트먼인데?’라고 생각하며 잠시 귀를 의심하고 다시 처음부터 유심히 광고를 보면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댄 애크로이드, 빌 머레이와 함께 고스트 버스터 3총사 중 한명인 에곤 박사를 연기했던 그 안경 쓴 배우가 바로 해럴드 래미스였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던 이들에겐 별것 아닌 일일 수 있겠지만, 최근 몇년간 독특한 코미디영화들을 연달아 선보이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감독’ 해럴드 래미스에만 익숙한 이들에게 이 사실은 아주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그의 초기 작품의 주인공으로 빌 머레이가 계속 등장했던 이유도 <고스트 바스터>와 해럴드 래미스의 이런 관계를 알고 나면 쉽게 이해될 수 있게 된다.

각설하고, 시카고에서 태어난 해럴드 래미스가 코미디와 인연을 맺은 것은 <플레이보이>에서 편집기자로 일하던 1969년에 시카고에서는 명성이 높은 세컨드 시티 극단에서 객원배우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중요한 것은 그 극단에서 빌 머레이, 존 벨루시 등 훗날 미국 코미디계를 주름잡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 이들과 함께 1974년 뉴욕으로 이주한 해럴드 래미스는 지금까지도 그 명성이 살아 있는 TV쇼인 의 구성작가 겸 코미디언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점차 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8년에 그 TV쇼를 스크린에 옮겨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는 코미디영화 의 시나리오를 담당하면서, 그 영화의 제작자였던 아이반 라이트먼을 만나게 된다.

그런 인연으로 빌 머레이, 아이반 라이트먼과 팀을 이룬 해럴드 래미스는 <고스트 버스터> <고스트 버스터2> 등을 통해 작가, 프로듀서, 감독 또는 배우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할리우드 코미디영화의 역사를 다시 써나간다. 그야말로 그가 웃기려고 마음만 먹으면 전 미국, 아니 전세계가 웃어줄 준비를 하고 그의 앞으로 모여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80년대 말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영화들 이외에도, 다이앤 키튼과 연기했던 87년작 <베이비 붐>이나 조디 포스터와 공연했던 처럼 조금 색다른 작품들도 포진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그 스스로 타진해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자신이 코미디언으로서보다는 코미디영화의 감독으로서 더 많은 재능을 타고났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곤 아이반 라이트먼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만의 감각으로 코미디 세계를 그려내는 시도를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자신의 재능을 한껏 발휘해 만들어진 영화들이 바로, <사랑의 블랙홀> <멀티플리시티> <애널라이즈 디스> 등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아예 배우로서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연이나 단역으로 <러브 어페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에어 헤드> 등의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던 것. 하지만 관객의 뇌리에 남기에는 지극히 작고 평범한 역할들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애널라이즈 디스>를 통해 홈런포까지 날렸던 그의 새 영화라기엔, <일곱가지 유혹>이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미이라>로 한창 주가를 올린 브랜든 프레이저를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도 제작비에 크게 못 미쳤던 흥행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이를 잘 드러내준다. 네티즌들도 IMDb를 통해 이 영화의 원작이 된 같은 제목의 67년작 영화에 훨씬 못 미치는 평점을 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해럴드 래미스라고 해서 항상 독특하면서도 흥행성 있는 코미디영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대감을 가지고 극장을 찾았던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재능이 너무나 뛰어난 것은 확실하다. 혹자의 말대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닌 원작이 있는 영화의 리메이크를 선택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던 것일까? 정답은 그의 다음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 분명하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