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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감독, 프로파일러 표창원을 만나다

그녀는 그를 궁금해했다. 우리는 그녀가 왜 하필 그를 궁금해하는지가 궁금했다. 작고 사소한 곳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줄 아는 그녀의 후각에는 뭔가 다른 것이 포착되었을까. <말하는 건축가>에서 진심을 캐내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재능을 선보인 정재은 감독과 최근 어지간한 기자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는 프로파일러(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전 교수의 만남의 현장에서 그 대답을 직접 확인해보았다.

표창원_어떻게 나한테까지 연락을 다 주시고. 감독님 취향은 아니지 않나. 아름다운 이야기만 다루는 줄 알았는데 왜 나같이 어두운 사람을.

정재은_편견을 갖지 마시라. (웃음) 3년 전 교수님의 특강을 들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2005년에 출간한 <한국의 연쇄살인>을 읽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때가 세 번째 영화를 호러나 스릴러쪽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때다. 어떤 영화감독 집에 가봐도 책꽂이에 그 책이 한권씩은 꽂혀 있다. 아마 감독들이 제일 기다리고 있는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2편은 언제 나오나.

표창원_출판사쪽에서는 계속 내자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후속작을 쓰고 싶진 않다. 워낙에 쓰는 게 고통스럽기도 했고.

<악마를 보았다>

<추격자>

<살인의 추억>

<한국의 연쇄살인> 2편은 언제 나오나

정재은_그런가? 의외다.

표창원_편견을 갖지 말아주시길. (웃음) 제일 힘을 기울여 쓴 책이라 애착은 가지만 나중엔 두려움이 들었다. 특정 영화를 거론해 죄송하지만 <악마를 보았다>(2010) 같은 영화를 보면서 왠지 화가 났었다. 혹시라도 그런 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한 게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책을 쓸 때는 그 안에서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되었는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봐주길 바랐는데 영화에서는 결과나 구체적인 묘사에만 치중하다보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나도 나지만 피해자 분들도 맘이 너무 아플 것 같고. 그분들께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범죄라는 분야를 떠날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삶과 사회를 연결짓는 좀더 부드러운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정재은_범죄자 개인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는 면에서 공감한다. 그래서 더욱 2편이 나와야 할 것 같다. 1편을 썼던 90년대와는 또 다른 사회적으로 변화된 부분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표창원_맞다. 취지와 필요성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선뜻 펜에 손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씨네21_책의 내용 때문에 위협을 받은 적은 없었나.

표창원_그런 부분에 대한 공격은 없었다. 그것보다 스스로 겁이 났던 건 아주 어린 친구들까지도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써야 하니까 썼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엔 계속 조심하게 되더라. 물론 긍정적인 메시지도 많이 얻었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함부로 쓸 수 없겠다는 부담감 같은 게 더해졌다. 처음에는 아무나 볼 수 있었지만 지금 시판되는 책은 미성년 구독불가로 성인인증을 하지 않으면 포장을 뜯지 못하게 바꿨다.

정재은_그래도 사실 그렇게 광범위하게 정리된 책이 아직 없다. 그 책에서 영감을 받는 작가들이 많고, 아직도 많은 영화들에서 작은 부분들을 따다 영화에 반영하고 있다.

표창원_감사한 일이다. 그런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뿌듯함을 느낀다. 한국 장르영화에서 사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어느 정도 보완해줬다는 데 대한 기쁨도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 부정적인 가능성들이 먼저 떠오르다보니 여전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재은_프로파일러라는 전문적인 세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다보니 묻고 싶은 것도 많다. 우선 어떻게 하면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나.

표창원_두 가지 길이 있다. 사건 수사에 관여하는 프로파일러가 있고 나처럼 분석과 자문을 해주는 민간 영역의 프로파일러가 있다. 실제로 사건 수사권을 가진 사람들은 경찰관이어야만 한다. 초기에는 사회학, 심리학 전공자 중에 40여명을 특채로 뽑기도 했다. 이들은 이후 전문적인 교육을 거쳐 일선에 배치됐다. 나는 일선 형사로 근무하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 교수가 되었고, 그 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요청을 받을 때마다 자문을 해주고 있다. 후자는 현재로선 내가 유일하다. 간혹 현장 경험은 없지만 이론만 가지고 자문하는 분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들이 아직 체계화되어 있진 않다. 가능하면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민간 영역의 프로파일러 시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변호사와 연계해 억울한 이들을 도와줄 수도 있고, 실종자를 찾아주는 등 범죄사건이 아닌 영역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재은_언제쯤 가능할 것이라 보는가.

표창원_현재 나의 상황을 아시겠지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서 언제 벗어날지 알 수 없는지라… (웃음), 시간이 생기면 연구소나 회사 형태로 전문적인 교육을 하는 프로파일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

정재은_혹 소용돌이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닌지. (웃음) 아카데미를 만들면 나부터 등록하고 싶다. 호기심에서 시작해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까지, 수요는 충분하지 않을까. 정식으로 코스를 밟으면 이해의 폭도 넓어질 것 같다. 한두번 특강으로 끝내기는 시간이 너무 짧다.

프로파일러 표창원

한국영화 속 공권력/범죄자 어떻게 보나

정재은_<악마를 보았다>를 잠깐 언급했는데, <추격자>(2008)도 그렇고 한국영화에서 공권력의 무능을 다루는 걸 어떻게 평가하나.

표창원_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관객 다수가 우리 경찰이 뛰어나다고 생각지 않는 게 사실이니까. 그런 부분들을 간과할 수 없을 거다. 다만 실제로 경찰이 모두 그런가 하면 그건 아니다. 잘 해결된 수많은 사건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내가 경찰쪽 입장에서 경찰을 변호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능한 경찰이란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잘 해결된 사례도 다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이 없으니 쉽게 희화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제는 관객도 그런 바보 같은 경찰만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재은_하긴 요즘은 관객이 너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게 더 식상할 수 있겠다. (웃음) 영화쪽에서 자문도 많이 할 것 같은데.

표창원_그 부분에서 제일 아쉬운 게 뭐냐면… 다들 치고 빠지기식이다. (웃음) 정식 절차 없이 전화를 걸어 문의하고, 그러면 나는 또 신나서 막 알려주고. 몇번 그러고 나면 연락이 끊긴다. 그 뒤에 잊을 만하면 그때 말했던 영화나 드라마가 뚝딱 만들어져 있더라. (웃음)

정재은_아예 크레딧조차 올라가지 않은 적도 있었나.

표창원_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미국에서 프로파일러를 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쪽은 완전 다르다.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문을 해준다더라.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선 아직 그런 정식 자문 요청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 비용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완성도 차원에서 아쉽다. 아예 툭 터놓고 사정을 얘기하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을 텐데. 살짝 조언만 듣는 정도로는 디테일을 제대로 살릴 수 없지 않겠나. 그런 면이 못내 아쉽다.

정재은_정식으로 항의한 적은 없나.

표창원_아직은 없다. 대신 도움을 요청한 다른 분들께 괜히 냉정하게 대한 적은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한 차례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 그럴 때 자문하면 매몰차게 거절한다. 복불복이다. (웃음) 사실 경찰쪽에서도 매끄럽지 못하게 대응하는 부분도 있다. 경찰 이미지 홍보 차원에서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는데 우리 경찰은 아직까진 그런 부분에서 매우 보수적이다. 경찰대학에 있을 때 보수에 상관없이 자문이나 강의 요청을 마다지 않은 것도 경찰의 바른 모습을 알리는 것이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재은_그런 의미에서 사건 수사 전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한번쯤 찍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표창원_아직은 어려울 거다.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수사과정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혹시라도 부정적인 묘사가 들어갈까 하는 걱정도 있을 테고. 경찰과 영화사의 다리 역할을 하다가 결국 중간에서 나만 핀잔을 들은 적도 여러 번 있다. 홍보영화라는 걸 확신한다면 몰라도 다큐멘터리는 더 힘들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사실 가장 좋은 홍보인데… 아직까진 홍보라고 하면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재은_한국영화 속 범죄자에 대한 묘사는 어떻게 평가하나.

표창원_잠깐 언급한 것처럼 범죄자들을 이해 불가능한 괴물로만 그리고 있는 게 가장 아쉽다. 잔혹 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범죄 자체의 묘사에만 집중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소 힘들더라도 인간, 시대, 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이 있다면 긍정적인 묘사인지 아닌지는 크게 문제가 안된다. <살인의 추억>이 좋은 예다.

정재은_감독의 세계관이나 작가의 선택도 중요한 것 같다.

표창원_유럽이나 미국의 범죄영화와 우리는 맥락이 좀 다르다고 본다. 우리는 범죄뿐만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것까지 정치/사회적인 요소와 정말 가깝게 붙어 있다. 그래서 더 끝까지 고민하고, 용기있게 밀어붙이고,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물론 범죄학적 이론을 모두 영화에 담아낼 순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테크니컬한 부분만 가지고는 본질을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재은_본인이 경험한 바로 영화와 현실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

표창원_일례로 영화와 달리 범죄자들은 자기 손에 수갑 채우는 경찰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단히 우호적이다. 나를 아이돌 스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범죄계의 아이돌. (일동 폭소)

영화감독 정재은 <말하는 건축가>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와 현실의 간극은 큰가

정재은_실제로는 범인들도 영화처럼 뛰어나진 않을 것 같다.

표창원_아직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범죄자를 만나보지 못했다. 영화에서 그렇게 묘사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캐릭터는 없다. 적어도 강력범들 중에는. 지능범이나 권력형 범죄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예를 들어 이번 국정원 여직원 사건도 대상이 국정원일 뿐 전형적인 조직범죄의 패턴을 보이고 있다. 나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조사를 한 것뿐인데 그걸 정치적으로 보고 제동을 걸더라. 범죄 수사를 하는 사람들은 합리적 의심이 들면 해소될 때까지 멈출 수 없다. 가만히 두면 모든 형사가 범인을 잘 잡을 수 있다. 천재일 필요도 없다. 그런데 행정이나 정치 영역에서 제동을 걸고 일선 형사들에게 자기 규제를 학습시킨다. 그러다보면 형사로서의 본능은 점차 줄어든다. 길들여지는 거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범죄를 보면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형사일 뿐이다.

정재은_그런 성향이 결국 최근의 과감한 선택으로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표창원_그런 것 같다. (웃음) 조만간 나올 책에 자세히 쓴 내용이긴 한데, 경찰대학 다닐 때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교내 절도범을 며칠을 쫓아다닌 끝에 잡은 적이 있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배의 폭행을 고발한 적도 있고.

정재은_그야말로 ‘형사적 본능’이다.

표창원_형사적 본능. 듣기 좋다. 영국 유학도 그래서 갔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때 그 지역 기동대에서 근무했었는데 결국 사건 해결을 보지 못했다. 그땐 비록 기동대 순경에 불과했지만 분했다. 형사로 발령을 받은 이후에도 여러 사건을 겪으며 아직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하면 범인을 잘 잡을 수 있냐고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15년쯤 근무해보라더라. 결국 참지 못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셜록 홈스의 나라로. (웃음)

정재은_이유가 그것뿐이었나.

표창원_정말 그게 다였다. 범인을 잘 잡고 싶다, 영국은 셜록 홈스의 나라다, 끝. (일동 폭소)

정재은_본인은 호쾌하지만 주변이 난감했을 것도 같다. 돈키호테 같은?

표창원_그런가? 형사로 근무할 때부터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 건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경찰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건 일종의 의무감에 가까웠다. 문제가 많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경찰의 방패막이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게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괴리도 많았다. 나름 10년간 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느낄 즈음에 이번 국정원 사건이 터졌다.

정재은_그러고보니 이제 교수님도 아닌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표창원_선생님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친구들은 앞을 따서 ‘표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니면 그냥 표형?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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