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는 밴드’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그들의 음악을 전혀 듣지 않았을 때도)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곤 했다. (1)그래, 좋아서 하는 게 좋은 거지,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고. (2)좋아서 하는 거라고 밝히는 건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는 얘기 아니겠어? 비율로 따지자면 1번의 생각이 훨씬 더 크지만 마음이 평화롭지 못할 때는 2번의 마음으로 삐뚤어질 때가 있다.
좋아서 하는 게 완성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거라고, 좋은 마음으로 나쁜 결과를 덮을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예술가는 의도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으로 말하는 사람이고, 창작 과정으로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논리적인 (때로는 비논리적인) 결과물로 누군가를 납득시키는 사람이다. 소설가든 영화감독이든 음악가든 화가든 ‘이번 작품은 정말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다 쏟으며 진심으로 만들었으니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나 역시 글 쓰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실은, 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쓰는 내내 힘들었으니까, 과정이 고통스러웠으니까, 때로는 기쁘기도 했고 짜릿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 내내 피를 말렸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면 아마추어로 돌아가서 예술을 대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브루노 무나리의 말을 되새긴다.
“예술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작업이 이미 누군가 시도한 것인지 알아보려고 걱정하지도 않고 또는 자신의 발견을 다른 이에게 알리려고 안달하지도 않으면서 기분 내키는 대로 그리거나 조각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나 몇몇 친구를 위해 작업하며 그 결과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보니 항상 만족스러워합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예술이 하나의 위안이 되는 것이지요.”
맞아, 내가 하려고 했던 게 이런 거였지. 이런 마음으로 뭔가를 쓰고 그리고 만들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마음을 다잡게 된다. ‘좋아서 하는 밴드’라는 이름 역시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좋아서 하는 밴드’의 첫 번째 정규앨범 ≪우리가 계절이라면≫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들이 정말 재미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네가 오던 밤>이라는 노래가 제일 좋았다. <네가 오던 밤>은 앨범의 다른 곡과는 달리 ‘아마추어리즘’이 폴폴 풍기는 단출한 곡인데, 듣는 내내 마음이 흔들렸다. 동네 오빠가 기분 내키는 대로 흥얼거리는 듯한 보컬도 좋고, 후렴구를 (부를 자신이 없었는지) 피아노로 대체한 곡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좋아서 하는 밴드’는 앞으로 어떤 뮤지션들이 될까. 나중에 자신들이 지은 밴드명을 싫어하게 될까, 언제까지나 좋아서 하게 될까. 그들의 미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