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3월31일까지 장소: LG아트센터 문의: 02-6391-6333
뮤지컬 <레베카>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와 마찬가지로 대프니 뒤 모리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하지만 소설과 히치콕의 영화를 모두 본 사람이라면 뮤지컬 <레베카>가 히치콕 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뮤지컬과 영화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그건 히치콕에게 물어보면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무덤 속에 있는 그는 아마도 이 뮤지컬의 캐릭터가 가진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장 눈여겨봤을 테니까. 이렇듯 뮤지컬 <레베카>는 영화보다 더 입체적이고 힘있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관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영화에 비해 더욱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막심이나 댄버스 부인 같은 캐릭터는 뮤지컬 <레베카>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다.
뮤지컬 <레베카>는 맨덜리 대저택을 짓누르는 망령 같은 존재 ‘레베카’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보트 사고로 1년 전 아내 레베카를 잃은 막심 드 윈터는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난 ‘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둘은 맨덜리 대저택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지만 잊히지 않는 존재인 레베카가 막심과 ‘나’의 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더군다나 레베카를 추종하던 맨덜리 대저택의 집사인 댄버스 부인은 사사건건 ‘나’와 부딪치며 ‘나’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때 이미 장례를 끝낸 레베카의 시신이 다시 발견되고 경찰은 막심을 레베카를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한다.
레베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 구조도 그렇지만 뮤지컬 <레베카>는 무대 공간 역시 영화처럼 활용한다. 공간상의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는 뮤지컬의 한계를 영상과 독특한 구조의 세트로 뛰어넘는 것이다. 바닷가의 풍경이나 맨덜리 대저택으로 가는 숲길을 보여주는 영상은 날씨나 분위기 등의 디테일한 표현을 통해 극에 스산함을 배가한다. 스릴러가 가져야 할 특유의 기운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이미 죽었으나 살아 있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존재인 레베카다. 그녀는 맨덜리 저택을 뒤덮은 자욱한 안개처럼 인물들의 불안과 광기를 증식시킨다. 그렇기에 레베카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부르는 댄버스 부인의 넘버 <레베카>는 마치 레베카와 안개를 소환하는 외침과 주술 같다. 특히 1막 피날레에서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며 <레베카>를 부르는 댄버스 부인의 모습은 광기로 가득 차 있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생전 감상적인 면을 표현해내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히치콕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그 역시 소름이 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