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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시어머니계의 레전드

MBC <백년의 유산> 속 박원숙의 캐릭터에 대하여

한때는 <나는 가수다> 로고를 본떠 만든 전단지가 대유행이었다. 자존심을 건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레전드급 가수들처럼 ‘우리도 그러하다!’고 묻어가는 한편 황금색으로 번들거리는 원본 이미지는 너무 거창한 나머지 살짝 훼손한 것만으로 웃음이 터졌으니 홍보로는 제격이었겠지. 유행에 뒤처진 감이 있지만 KBS <사랑과 전쟁2>도 57화 ‘나는 시어머니다’편에서 레전드급 시어머니를 불러냈다. 시집살이를 못 견디고 이혼한 큰며느리가 위암 말기로 사경을 헤매는 병실에서 “재혼 자리는 전처 집에서 알아봐줘야 잘 산다더라”며 사돈네에 전화를 넣으라는 구식 시어머니. 그리고 큰집에 이어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작은며느리도 갑상선암이 발병했다.

보는 것만으로 암이 생길 것 같은 시어머니가 또 있다. MBC <백년의 유산>에서 방영자(박원숙)는 명동에서 사채를 하며 홀몸으로 자식을 키우고 국내 5위의 식품회사 금룡푸드의 회장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며느리 민채원(유진)에 대한 학대는 예식장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싫증을 잘 내는 내 아들에게 너는 짧으면 3개월, 길어야 3년이니 미리 준비를 해두라’던 방영자는 3년이 가까워오자 채원 앞에 여자들의 사진을 늘어놓고 새 신붓감을 고르게 한다. 아들의 와이셔츠를 가져다 립스틱 자국을 내고 며느리에게 내미는데, 자기 입술에 립스틱 지우는 걸 잊었고! 기가 차서 피식 웃는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고 레슬링 한판! 채원을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탈출과정에서 채원을 도왔던 남자 이세윤(이정진)을 며느리의 불륜 상대로 낙점! 조잡한 흉계와 보란 듯이 저지르는 악행의 리스트는 이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백년의 유산>이 이해나 납득의 범주를 벗어난 캐릭터를 들이밀 수 있는 까닭은 박원숙의 맹렬한 연기 덕이다. 채원을 “땡처리”라 부르는 방영자는 박원숙의 2007년 MBC 드라마 <겨울새>에서 파혼했던 며느리가 “재고품”이라고 어깃장을 놓던 강 여사를 떠올리게 한다. 시장 일수를 놓다 건물을 사들이며 재산을 불렸고, 극심한 마마보이 아들을 조종해 얕은꾀로 며느리의 숨통을 조이는 강 여사는 그악스러운 건물주의 한쪽 면을 숨기려는 듯 아들과 며느리에게 극존칭을 쓰는 양면성을 지녔다. 화가 나면 안방에 놓인 물건을 부수거나 아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를 뿐 며느리에겐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강 여사가 바깥사돈을 찾아가 30억원을 빌려달라고 말할 때의 표정. 그리고 “형제간에도 돈거래는 안 합니다”라는 답을 듣고도 다시 찾아가 이번엔 20억원을 요구할 때, 교양을 거적처럼 뒤집어쓴 안쪽의 욕심이 드러난다. 반면 2천만달러 수출 훈장을 받은 기업인 방영자는 곧 내쫓을 며느리에게 사채놀이하던 자신의 과거를 반복해서 떠들며 더 혐오스럽고 더 천박한 얼굴을 강조한다.

인상적인 로고의 폰트와 3D효과를 흉내낸 마트 전단지 속 빼곡한 세일품목 같은 방영자의 악행들. 조잡한 전단지를 읽는 재미를 모르지 않으나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시어머니와 곧 식품업계 싸움으로 대결하게 될 며느리쪽 세력 때문이다. 국수공장 가업을 삼대째 이어온 채원의 친정은 ‘옛날국수’를 간판으로 달고 있다(찬장 안에 있는 노란색 소면 포장지의 제품명과 동일한 폰트다). 그리고 채원을 도왔던 세윤은 이 드라마를 제작지원하는 O식품회사 아들이다. 으음. ‘옛날국수’와 O식품회사가 크로스하는 순간, 완전체로 거듭나고 시어머니를 쳐부수는 그림이 떠오른다. 드라마 곳곳에 이 회사 제품이 배치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합법적인 PPL이고 실제 기업을 주인공들의 일터로 삼은 드라마가 적지 않으나, 저 시어머니가 저렇게 지독한 까닭이, 화해고 나발이고 우선 경찰 출동부터 해야 할 것 같은 이유가 O식품업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면? 보고 있자니 국수는 당기는데 정신이 더부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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