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난감한.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런 영화였다. 특히 여기엔 파이의 개인사, 등장하는 이름, 내레이션, 심지어 바나나까지 몽땅 허투루 쓰인 게 없는데, 원작 소설이든 영화든 비유와 상징이 야수처럼 으르렁대며 이야기를 살아 있게 만든다. 배가 ‘침춤’(Tzimtzum)인 것도 그렇다. ‘침춤’은 무한의 존재가 스스로 수축해 만든 진공의 공간에 세계를 만들었다는 카발라 창조론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핵심이기도 한 이 상징은 미카엘 다나의 스코어로 한번 더 강조된다. 상어떼 틈의 파이가 침몰선을 목격할 때 흐르는 이 곡은 이후에도 여러 번 변주되며 신비감을 가중시킨다. 한 세계가 파괴될 때 또 다른 세계가 탄생한다. 거기에는 이성과 본성, 의심과 믿음,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이 모순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가득한 작품의 음악이 영적으로 들리는 건 한편 당연하다. 미카엘 다나는 비서구적인 사운드 소스를 전자음악과 활용하며 유명해진, 명상음악에도 심취한 작곡가다. ‘고기소스’처럼 뿌려진 타블라의 몽롱한 리듬은 3D공간의 심도를 공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돕고, 원작자 얀 마텔식의 구원과 리안 감독식 재해석을 단단하게 받친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의 울렁임처럼, 미학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압도적인 스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