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이라고 에둘러 표현해본다. 엄밀하게 따지면 수학은 낙제 수준!) 수학책 보는 건 좋아했다. 거기엔 숫자와 도형이 많아서 보고 있으면 암호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걸 계속 들여다보기만 해도 세상의 비밀을 알아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표지판이나 그래피티나 도시 속 기호를 보는 걸 좋아했다. 낯선 나라의 도시에 가면 암호문 같은 표지판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조금 과장하면) 기호나 표지판 속에는 문명과 윤리와 마음이 들어 있다. 단순화된 동그라미와 네모와 화살표 속에서 그런 걸 찾아내고 싶어 하는 건,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거겠지.
예전 외국의 어느 도시에 갔을 때 지하철 즉 메트로(Metro) 표시를 해놓은 ‘M’을 보고 그 형상이 참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다. 거 참 시원시원하게 세워놓았군, 아주 멀리서도 지하철을 잘 볼 수 있겠어, 싶었다. 그로부터 몇달 뒤, 사람들과 함께 외국 여행을 하다가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저 멀리 M자가 보였다. 내가 잘난 척하면서 “아, 저기 지하철이 있네요”라고 말했고, 옆에 있던 사람이 “에이, 무슨 소리에요. 맥도널드 간판이구먼”이라고 반박했다. “내기할래요?” 내가 말했고, “그럽시다” 호기롭게 상대방이 말했다. 얼마였더라. 5유로였나, 10유로였나. 우리는 커다란 M자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메트로 같기도 하고, 맥도널드 같기도 했다. 걸어갈수록 조마조마했다. 살면서 얻는 깨달음이 참 많은데, 돈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 가장 값지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함부로 확신을 가지면 안된다. 그리고 그 뒤로 맥도널드에는 잘 안 가게 되더라.
기호를 워낙 좋아해 소설의 제목으로 쓰기도 했다. <C1+y=:[8]:>라는 도무지 해석 불가능한 제목의 단편을 쓰기도 했고, 최근에 낸 작품집 제목은 <1F/B1>이다. 호기롭게 쓰긴 했지만 불편한 점이 많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수시로 받는다. ‘시티는 스케이트보드’, ‘일층 지하 일층’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라고 자주 대답한다. 그럼, 그렇게 제목을 달 일이지 왜 기호를 제목으로 하셨나요, 라고 물어본다면 ‘에이, 그럼 폼이 안 나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명색이 소설가인데) 그렇게 말하긴 그렇고 기호가 가진 모호함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답한다. 기호는 함축적 언어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빈틈이 꽤 넓어서 상상할 여지가 많다.
싱어송라이터 ‘를’의 노래 <ㅁ>을 듣다가 여기까지 이르렀다. ‘미음’이라고 읽고, 상자 속에 갇힌 마음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라고 한다. 앨범 재킷이 무척 마음에 든다. 여러 집들이 조각조각 이어져 ‘를’이라는 글자를 만들고 있는데, 음악도 비슷하다. 일상의 소리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져 노래의 빈 곳을 채우고 있다. 익숙한 노래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다르다. <ㅁ>을 다 듣고 나면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져서 ‘ㄹ’(리을)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