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는 SBS의 <가요대제전>이었다. 진행 미숙과 마이크 사고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하는데, 글쎄, 인간이 사회를 보는 거니까 실수를 하는 거고, 가끔 마이크가 안 나올 때도 있는 거지. 중요한 점은 어떤 공연을 하고 싶었냐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을 이리저리 뒤섞어서 네개의 새로운 팀으로 만드는 시도도 새로웠고, 장르를 넘나들었던 출연진들도 화려했고, 무대 연출에도 공들인 티가 났다. 연말이 되어도 똑같은 쇼를 반복하던 기존의 프로그램들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참신했는지 모른다.
아이돌 그룹을 네개의 새로운 팀으로 분리 결합한 시도가 제일 신선했다. ‘대즐링 레드’, ‘미스틱 화이트’, ‘다이나믹 블랙’, ‘드라마틱 블루’. 이렇게 팀을 만들어 노래 연습, 춤 연습 시킨 다음 사진 찍고 영상 찍어 데뷔시키는 장면을 연속으로 네번 보고 나니, 우선은 아이돌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뜻하지 않게 아이돌 산업을 스스로 비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말하자면, 그건 분업이 철저하게 이뤄진 공장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다.
공연을 보고 있자니 나만의 아이돌 그룹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어릴 때부터 그런 짓 참 많이 했다. 나만의 축구팀, 나만의 야구팀, 나만의 농구팀을 수시로 만들었다. 우선 나만의 팀을 만들려면 시대를 넘나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펠레와 메시가 한팀이 될 수도 있고, 마이클 조던과 허재가 한팀이 될 수도 있다. 그 선수들의 최전성기를 기준으로 놓고 팀을 짜보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아이돌 그룹 역사가 짧긴 하지만 자, 한번 해보자.
우선 여자팀의 리더는 누가 맡으면 좋을까. 리더십이 뛰어나고 성격이 원만한 사람이 좋을 테니 (내가 그 사람들 성격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이효리가 어떨까. 아, 그럼 아깝게 떨어진 씨엘을 부리더(이런 말이 있었나)로 선정하고, 김완선이 춤과 섹시함을 맡고, 나미가 독특한 퍼포먼스를 담당하게 한다. 청순한 유진과 단단한 보아를 빼놓을 수 없겠고, 팀의 얼굴을 맡아줄 윤아도 있어야겠고 막내는 설리. 이렇게 대충 뽑아도 완전 드림팀이다.
남자팀은 좀더 힘들다. 마땅히 리더를 맡길 사람이 없다. 서태지에게 맡기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현도가 어떨까(이런 거 하다보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괜히 혼자 심각해지고 그런다). 박남정과 현진영은 춤 때문에라도 반드시 있어야겠고, 박혜성과 은지원이 귀여움을 맡고, 윤계상도 꼭 있어야 한다. 막내는 기광이 좋겠다.
나만의 팀을 만들고 면면을 살펴보면 허망할 때가 많다. 우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그게 만약 가능해도 그다지 매력적인 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팀이란 건, 서로를 보충해주는 존재들이니까 티나지 않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팀의 그늘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든 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