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별다른 사고 없이 좋게 마무리를 짓는 미니시리즈 드라마란 게 기적 같을 때가 있다. 70분물 주당 두편. 당연한 밤샘 촬영. 예고도 내보내지 못할 정도로 급박한 촬영 스케줄. 중반이 넘어가면 작가와 배우, 스탭들 모두 재능과 성실함의 차원을 넘어서는 쥐어짜기로 매 장면 하얗게 불태우는 마당에 “한류 열풍, 자랑스러워요” 뭐 이런 말은 못하겠다. 이따금씩 훌륭한 드라마가 나오는 이유를 손에 꼽을 만한 천재급 작가 몇명에서 찾는 것도 서글프다. 어쨌든간에 이 판에서 방송사는 한계상황을 돌파하며 시스템을 구축하고 노하우가 쌓이는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리스크가 큰 자체 제작 비율은 낮아지고, 편당 제작비와 PD의 파견으로 만들어지는 외주제작 드라마가 일반적인 지금, 제작인력을 양성하고 공급하는 책무까지 소홀히 한다면 방송사에 남은 영향력은 편성뿐. 특히 공영 방송사가 드라마 연출가를 키우지 않는다면 이 판에 기여하는 게 뭐가 남는가.
한탄의 이유는 KBS <드라마 스페셜> 예산 축소 소식 때문이다. 편당 평균제작비 8천만원. 미니시리즈의 3분의 1 수준으로 근근이 꾸려오던, 그나마도 2013년 KBS 이사회의 예산안이 통과된다면 올해 42억원에서 21억원으로 반 토막이 나게 생겼다. 드라마 PD는 오랜 조연출 기간을 거치며 도제식으로 현장을 배운다. 젊은 PD가 단막극을 거치며 세상에 내놓은 작업물을 평가받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고 다듬는 것은, 미니시리즈의 공동연출이나 B팀 연출 등으로 경험을 쌓는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과정이다. 물론 단막극을 미니시리즈 연출의 준비운동쯤으로 낮잡아 볼 생각은 없다. 단막극에서 보여준 밀도와 스타일을 미니시리즈에서 이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시청률이 높았던 미니시리즈 연출가의 허점투성이 단막극을 보며 혀를 찬 적도 있으니까. 편당 시간도, 총편수도 너무 긴 한국 드라마가 놓치는 밀도와 소재들을 고민해야 할 자리에서 제작비를 반으로 깎는다는 것은 싸게 찍을 방법과 소재를 더 쥐어짜란 소리처럼 들린다. 뭘 어떻게 더.
지난해 6월부터 일요일 심야에 방송된 KBS <드라마 스페셜> 시즌3가 마무리될 즈음해서 콕 찍어뒀던 연출자와 작가들을 소개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우선 김진우 PD의 <칠성호>(극본 마창준)와 <상권이>(극본 유보라)는 인물의 시선이 가닿는 곳과 관찰시점의 카메라 높낮이가 끌어내는 긴장이 절묘하다. 또한 주연은 물론 조역 하나까지 인물들이 언제 반응하고 어떤 심리변화를 보이는지 연출자가 놓치는 부분이 없다. 유보라 작가도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태권, 도를 아십니까?>를 보고 작가 이전에 학교현장에 있었을까 이력이 궁금했는데 <상권이>에선 아파트 공사장 인부로도 일했나 싶을 정도로 그럴싸한 공기를 잡아낸다. <저어새, 날아다가>까지 세편 모두 갈등이 발생하고 극이 추진력을 얻는 대목보다 그 사이사이 일상적인 장면에 야심이 보인다.
박현석 PD의 <습지생태 보고서>(극본 한상운)는 주인공 성준의 연기를 담담하게 눌러준 덕분에 종국에 터지는 그의 울음에는 ‘간신히’라는 부사가 겹친다. 의류수거함에서 가져온 품이 남아도는 추리닝, 식당이나 술집 등에서 하나씩 슬쩍해왔을 지하 원룸 살림살이 등 의상과 소품, 그리고 로케이션까지 꼼꼼하고 적절했다. 마지막으로 폭행당하는 친구를 돕지 못했고 사고 이후에도 방관했던 세 여자가 돌아온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심리극 <친구 중에 범인이 있다>(극본 권기영, 연출 노상훈)는 반응하는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감정을 따라가는 쾌감이 상당하다. 개인 취향에 기대 골라낸 것 외에 괜찮은 작품이 많으니 다시보기 서비스를 추천하며, 부디 KBS의 단막극 제작비 현실화와 MBC 단막극 부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