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이 새롭다는 건 알겠다. 피터 잭슨의 야심도 얼핏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어떤 지점에서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지를 알기엔 모자라다. 도움이 필요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자 국내 3D 영화 관련 전문가인 최익환 감독의 조언을 받아 <호빗>을 다시 한번 꼼꼼히 뜯어봤다.
-<호빗>의 전체적인 인상은 어땠나. =취향의 문제 아닐까. 팬들에게 봉사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세편의 시리즈 제작 방식이라 한편만 놓고 판단하기는 애매한 지점들이 있다. 전반적으로는 피터 잭슨 감독 역시 <아바타>의 연장선상에서 작품에 접근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른바 실감으로 대변되는 3D 효과가 다다를 수 있는 끝자락을 본 느낌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호빗>이 새롭게 선보인 3D는 성공적이라고 보나. =그 역시 취향의 문제다. 이제까지 먹어보지 못한 맛인 건 확실하다. 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 맛이 분식처럼 익숙해서 당황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스크린이 아니라 선명하고 큰 TV를 본 것 같은 느낌. 영상에서는 점차 멀어지고 TV와 점점 가까워진다. 새로운 질감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어떤 것인가. =3D가 추구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기술적인 완성도와 관객에게 전달되는 효과. 그 두 가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실 <아바타>가 몰고 온 혁신 이후의 영화들은 대부분 3D라는 홍보 효과에만 매달린 측면이 있다. <호빗>의 경우 명백하게 ‘좀더 실감나게,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이라는 목적으로 만들었고 분명한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모든 것은 아니다. 가령 생략의 묘를 살린 연출이라든지. 아직까지 3D는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호빗>을 두고 ‘영화 같지 않다’는 평을 하기도 하는데. =일단 수용자로서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익숙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명하고 밝은 화면을 보고 눈이 시리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아직 이런 질감의 화면을 충분히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년에 영화 한두 편을 접하는 사람들은 선명하고 밝아서 오히려 좋다고 느낄 수도 있다. 결국 습관이다. 산업적인 이유로 HFR이 앞으로 주도권을 잡으리라 본다. 결국 3D가 일으킨다는 소격 효과는 유사한 영화가 나올수록 차츰 줄어들 것이다.
-HFR 방식이 그간 3D의 미진한 부분을 충분히 메웠다고 보는가. =기술적으로는 거의 결점을 찾아낼 수 없다. HFR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화면에서 흔들리고 끊어지는 것을 메워주기 때문에 눈의 피로감은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혁신이라기보다는 강화라고 부르고 싶다. 밝고 선명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새롭다고 하기엔 모자란 측면이 있다. 아이폰5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웃음)
-구체적으로 아쉬운 점은. =창작자로서 아쉬운 건 금기에 용기있게 도전하지 못한 점이다. 상업적인 목적, 기술적인 완성도, 기존의 익숙한 연출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결국 리스크를 하나도 감수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 점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그간 기술자의 관점에서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믿어온 것을 과감하게 시도한다는 측면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인물의 얼굴을 반으로 쪼개거나 하는 식으로, 시각적 피로감을 유도한다는 미명하에 피해갔던 장면을 과감히 시도한다. <호빗>이 이룬 기술적 성취의 대부분은 이런 이질감을 줄였다는 데 있으며, 그 자신감이 연출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