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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3D 혹은 영화의 근원을 향한 뜻있는 여정
송경원 2013-01-08

<호빗: 뜻밖의 여정>과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탐색해보는 3D영화의 현재와 미래

3D는 영화의 미래인가. 이제는 해묵은 논쟁이 되어버린 (몇몇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버린) 질문을 뒤로한 채 지금 이 시간에도 3D영화들은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관객을 경탄시킬 만한 완성도의 3D영화가 그리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빼어난 성취를 보인 몇편의 영화가 시장 전체를 주도해나간다는 의미기도 하다. 말하자면 3D는 여전히 과도기적인 상태다. 2012년 겨울, 다시금 시장을 주도해나갈 만한 2편의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명한 갈림길이다. 피터 잭슨의 <호빗: 뜻밖의 여정>과 리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의 공통점과 차이를 통해 3D영화의 미래를 탐색해보자.

피터 잭슨의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호빗>)과 리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각각 현재 3D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의 끝자락에 서 있는 영화들이다. 그 필요성과 효용에 대해선 이견이 갈릴지 몰라도 기술적 완성도에서 두 작품이 이룬 성취를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두편 모두 3D의 한계로 지적되던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냈고, 현재의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시각적 성과물을 뽑아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즉 두 영화의 지향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이는 아직까지 3D영화에 관한 한 정답이 없음을 방증한다. 기술의 첨단에서 두 거장 감독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된 것을 단지 절묘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어딘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두 영화가 보여준 3D의 간극은 어쩌면 3D라는 새로운 기술이 품은 본질을 드러내는 귀중한 지침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다양하게 반응하고 각자의 해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여기, 드디어 그 차이를 논할 만큼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한 두 갈래 길이 있다. 모두가 헤매고 있을 때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고, 빼어난 누군가를 무작정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만, 드디어 우리는 3D에 대해 다시 한번 논할 기회를 얻었다.

채워넣어 완성한 공간의 실감

<호빗>의 3D는 비로소 제대로 된 3D의 영역에 도달한 듯 보인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입체감이라기보다는 몇개로 나뉜 평면을 보여주던 그간의 3D와 비교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간의 깊이는 실로 현실적이다. 3D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던 밝기의 문제도 해결했다. 48프레임의 HFR(High Frame Rate) 방식은 결정적으로 움직임의 불연속적인 이질감을 상당 부분 덜어냈고, 입체감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바타>가 추구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지점을 상당 부분 해결해낸 느낌이다. 그럼에도 <호빗>이 선보인 기술적 성취는 기존 3D 화법의 보완 내지 강화를 벗어나지는 않고, 전체적인 틀에서는 여전히 <아바타>가 시도 또는 추구했던 3D 문법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아바타>가 선보인 3D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내릴 문제는 아니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관객을 영화 속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극한의 재현을 통해 여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공간의 세밀한 묘사를 통한 공간감각의 확장이다. 이는 돌출된 입체감이 아니다. 화면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 3D의 공간감은 이를 위해 구축된 세팅으로 표현된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데 사실 3D의 효과는 실감이 아니라 경이의 영역에 있다.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영화가 선보인, 풍경을 재현하는 마법의 기술은 어디까지나 놀람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시각기술이란 언제나 그랬다. 우리는 흔히 그것이 재현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쉽게 믿어왔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전혀 별개의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다. 기술은 언제나 경이를 위해 봉사해왔고 그건 3D 역시 마찬가지다. 산업적인 맥락을 배제하고 논한다 해도 3D의 필요성은 ‘새롭고 신기한 경험’ 그것으로 충분했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기술이 본격적으로 다음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그것이 충분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익숙해진 뒤의 일이다. 리얼리티에 관한 오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3D의 중요한 문제로 지적된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니라 3D가 극적인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당연한 문제다. 3D가 리얼리티를 끌어올리는 수단이라는 건 단순한 오해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람이 다름 아닌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다(적어도 로버트 저메키스는 그것을 철저히 놀람의 기제로 활용했다). 그 제임스 카메론조차 <아바타> 이후에는 CGI가 아닌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그동안 CGI라는 재밌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스토리라는 큰 공을 놓쳤다”는 피터 잭슨의 발언도 이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후 행보는 철저히 ‘더욱더 사실적으로’에 초점을 맞춘 듯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결과물이 바로 <호빗>이다(<아바타2>가 60프레임으로 제작될 예정임을 염두에 두시라).

<호빗>의 3D를 보노라면 마치 내가 중간계에 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는 경탄을 금치 못할 미술과 미장센의 세밀한 재현에 기초를 둔다. 다시 말해 <호빗>이 밝고 선명한 3D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다 보여줘도 좋을 만큼 철저한 재현(그것이 세트건 CGI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것을 장대하게 보여주기 위해 전반적인 화면을 롱테이크와 딥포커스로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시점이 에픽무비에 어울리는 연출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최대한의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롱테이크와 딥포커스의 연출적 특질은 피터 잭슨이 지향하는 ‘현실에서의 중간계 재현’ 또는 ‘관객이 중간계에 있는 것처럼’에 완벽하게 부합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터 잭슨의 3D는 화면 안에 최대한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관객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건 그렇지 못하건 그것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관객은 이야기를 따라가기 마련이고 이야기상 중요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그는 스크린이 할 일이란 그것을 선별해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 듯하다. 때문에 <호빗>은 진짜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시각정보로 가득하고 우리는 그같은 정보의 축적을 통해 실감을 얻는다(혹은 그렇다고 믿는다). 그 위에 자연스럽게 이야기라는 정보가 다시금 재구축되는 것이다. <호빗>이 제공하는 꽉 채워진 시각적 정보는 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즉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3D영화는 시간의 문법이 아니라 공간의 문법을 따른다. 편집의 리듬보다 미장센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HFR의 선명한 화면이 필름 룩을 버리고 TV화면에 가까워져 도리어 어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피터 잭슨은 일관되게 말한다.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3D영화를 볼 때 10분도 안돼 그 영화가 3D라는 사실을 잊는다.” 결과적으로 선명한 재현을 위해 TV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질감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질 때까지는 기술은 계속 보완되고 화면은 계속 채워져야 한다.

비워내 집중시킨 공간의 화법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역시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3D라는 기술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것. 3D의 입체감은 단지 하나의 효과일 뿐, 그것 자체가 영화적 체험은 아니다. 3D는 단지 실감을 효과적으로 보조해주는 기법에 불과하다는 것, 이를 통해 이야기를 체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까지는 피터 잭슨과 인식을 같이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는 두 작품 모두 3D효과 자체를 경이와 놀람의 도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관객이 그만큼 3D라는 시점에 익숙하다는 말이기도 하며, 그 순간에야 비로소 3D는 온전히 놀람이 아닌 하나의 문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피터 잭슨이 완전한 입체화(혹은 시각의 공간화)를 통해 3D의 ‘NOT TO DO’(기술적으로 금지된 사항들)를 무력화시키려 했다면, 리안 감독은 3D를 하나의 시점 혹은 문법의 일부로 변모시킨다. 3D가 공간을 전시하기 위해 카메라로 공간을 훑고 들어가는 것이 전부라면 단지 입체감을 도드라지게 하는 데 그치겠지만, 여기에 왜 공간을 훑어야 하고, 어떤 피사체가 왜 앞으로 도드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서사적 정당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컨대 롱테이크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와 결합하느냐에 따라서 롱테이크는 풍경에 대한 묘사도 될 수 있고,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하는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형식이란 그런 것이다. 그동안의 3D가 형식이 아닌 하나의 기술에 지나지 않았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것을 하나의 형식으로 의미화시키려 한다. 이때 입체감이라는 것은 그저 하나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원작 <파이 이야기>가 지닌 환상과 믿음에 관한 주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음은 의미심장한 지점이다. 그동안 3D는 가능성있는 기술로 인식되기는 했어도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효과적인 문법으로는 해석된 적이 없다(정확히는 드물다. 작가로 불리는 몇몇 감독은 꾸준히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중이다. 예컨대 <피나>의 빔 벤더스나 <잊혀진 꿈의 동굴>의 베르너 헤어초크 같은). 리안 감독은 이러한 3D를 하나의 영화언어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배제와 생략의 문법이다.

피터 잭슨이 모든 시각정보를 한계치까지 채워넣어서 시각정보 자체의 중요성을 일상화시킨다면 리안 감독은 이야기 차원에서 가능한 한 시각정보를 최대한 배제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한 소년과 호랑이 한 마리가 전부인 이야기다. 여기서 배경이 되는 공간은 마치 블루 스크린처럼 비어 있다. 정확히는 <라이프 오브 파이> 역시 물의 움직임이라는 시각정보를 한계치까지 채워넣고 있지만 중요한 건 이것이 물의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관객에게 그것은 여백으로 여겨도 좋을 정보로 인식되고, 영화는 전체적으로 배제와 생략을 통해 3D 효과를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것으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요컨대 관객에게 이야기 정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뒤 공간의 볼륨, 폭넓은 밀도와 거리감을 이야기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기술적으로 혁신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는 혁신적이다. 애초에 CGI로 그리는 영화인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좀더 사실적으로’라는 강박에 방점을 찍지 않고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로 전환한다. ‘우아하지만 장점을 증명하려 서두르는 법이 없고, 구식으로 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씨네21> 885호 리안 감독 인터뷰)는 리안 감독에 대한 평가 그대로다.

영화적인 실험은 계속된다

방식의 차이는 극단에 서 있지만 두 감독의 영화에서 괄목할 만한 것은 드디어 3D가 연출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과거 관객의 피로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무수히 제한되어왔던 기술적인 금기사항이 이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와 같은 이질감이 실상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관객도, 감독도 함께 깨닫고 있다. 과거 시각적으로 가장 덜 피로한 지점에서만 드라마가 전개돼야 한다는 제한이 있었지만, 사실 관객은 그런 사소한 화면의 이질감에 그리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인물이 인형처럼 나오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에 불과하다. 입체영화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혹은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이질감은 사라지거나 무시될 것이고, 그만큼 3D를 활용한 영화언어는 자유로워진다. 필연적으로 공간을 서사화하고자 하는 3D에서는 리듬보다 공간, 특히 마스터숏과 미장센은 점점 강조될 수밖에 없고 영화는 다시금 공간과 조형의 예술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영화적 근본으로의 회귀. 물론 모든 것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랐을지 몰라도 영화언어로서 3D는 여전히 과도기를 지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있다. 이제 3D영화를 보고 놀랄 시점은 지났다. 새로운 경험 역시 언젠가는 익숙한 옛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고, 3D영화의 가능성은 다양한 방향에서 계속 모색될 것이다. 이 재미난 장난감은 좀더 영화적인 실험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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