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결과는 한국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박근혜 캠프의 콘텐츠 분야에 대한 정책기조가 ‘규제 완화’ ‘킬러 콘텐츠 산업 육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산업적인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매년 똑같은 얘기를 MB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도 해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 뭐 다른 것이 있을까 싶어 그제야 박근혜 캠프의 공약집을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별게 없다.
지난해 10월경에 영화계에서는 매우 상세한 정책과제와 사업들을 공약사업으로 추진해줄 것을 모든 후보에 공개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받아들일 만한 공약이 상당수 있었고 디테일도 잘 짜져 있어서 그중 얼마라도 당선자의 공약집에 담기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차원에서 제시할 만한 중요한 정책과제(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 개정, 영화발전기금 재원 확보, 조세지원, 글로벌펀드)도 산적해 있기에 그런 내용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캠프에 전달되어 공약이 되지 않았을까 했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 공약이라는 거창한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 작은 업계의 요구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계의 정치력이 그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일까. 아무튼 결론적으로 공약집에 담긴 영화 관련 정책은 ‘독립, 예술, 다양성 영화 제작지원 및 전용관 확대’가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정부 보고서는 ‘글로벌 영화산업 육성과 다양성 영화 지원 확대’라는 두 방향을 사업계획의 큰 축으로 제시하기 마련이다. 근 10년간 변하지 않는 전형적인 포맷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중 다양성 영화 지원 확대를 특정해서 내세운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공약집에 ‘순차적으로라는’ 조건이 달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앞으로 독립영화 지원금과 전용관은 조금이나마, 천천히라도 늘어나겠구나 싶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다음에 있다. 문화계 좌파 숙청을 기치로 걸며 독립예술영화 진영에 칼바람을 일으켰던 MB 정부도, 결과적으로 제작지원 예산과 독립영화 전용관 수를 양적으로 확대하긴 했으니 말이다. 차기 정부가 제작지원 예산도 두세배씩 증액하고, 전국에 독립영화 예술영화 전용관도 막 지어주고 한다면 물론 좋겠다. 그런데 그러면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시네마테크는 만년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디플러스에서도 4대강 개발 비판 영화를 맘대로 틀 수 있을까? <MB의 추억> 같은 영화가 제작지원도 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맘 편하지 않을까 싶다. 공적자금의 지출이 늘어날수록 그에 대한 관리, 통제도 강화되기 마련이다. 김대중 정부가 내세웠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 기조는 이미 오래전에 ‘지원은 줄이고 간섭은 늘린다’로 바뀌었다. MB 정부 초기에는 지원사업을 그냥 없애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최근에는 그나마 지원은 해줄 테니 조용히 있거나, 우리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고 틀어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까?
이 대목에서 박근혜 캠프의 공약 중 한 가지가 오버랩된다. ‘아동/청소년/가족용 영상 콘텐츠 제작지원 확대’! 뭔가 싸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 한 문구에서 등급심의, 청소년 유해물 지정 등의 검열 문제나, 제작지원사업, 전용관 상영작, 투자조합의 투자 라인업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은 과한 것일까?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하 문화산업연대)은 지난 10월 문화산업 발전과 문화복지를 위한 8대 공약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①보편적 문화복지를 위한 문화이용권 확대와 문화비 소득공제 신설 ②문화융합산업 전담 부처 신설 및 관련 기능 일원화 ③문화융합산업 진흥재원, 국가예산 2% 수준 확보 ④아동 출연자 야간 촬영 금지 및 권익 보장 ⑤대중문화산업 종사자 공적 재교육 확대 ⑥대중문화산업 매니지먼트 제도화 ⑦독점적 유통사업자에 의한 불공정거래 규제 ⑧대중문화산업 부가가치세 폐지 등이 담겨 있다(자세한 내용은 영진위 발간 <한국영화> 32호 특집1. ‘한국대중문화의 다음을 그린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