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우디 앨런 감독의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
2002-01-31

삶은 싸구려 TV프로를 닮았다

Husbands And Wives 1992년, 감독 우디 앨런 출연 미아 패로

2월2일(토) 밤 10시

아마도 우디 앨런의 영화, 하면 특정한 인물이 떠오를지 모른다. 주로 예술분야에 종사하며 여성에 대한 판타지 혹은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고, 내적으로 극심한 분열양상을 지닌 남성. <애니 홀>(1977) 이후 이 캐릭터는 배우 우디 앨런의 개성적인 페르소나, 즉 가면노릇을 하곤 했다. 흥미롭게도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는 감독의 자기반영적 면모가 두드러진 영화다. 앨런의 실제생활을 은근히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를 제작하던 중 앨런은 세인들 입방아에 오른 ‘순이’ 스캔들을 경험했고 같은 이유로 아내이자 영화 파트너였던 미아 패로와의 결별작이 되었다. “난 아내와 함께 있으면 꼭 오디션을 보는 기분이라니까.” 당시의 내막을 알고 있다면 이 대사는 어쩐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루스 부부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잭과 샐리의 결별소식을 듣는다. 잭은 샐리와 헤어진 뒤 어린 에어로빅 강사와 사귀게 되고, 샐리 또한 다른 남자를 만난다. 루스 부부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충격을 받고, 한편으로 왠지 불안한 마음을 느낀다. 잭과 샐리의 문제에 민감한 아내 주디는 남편과의 생활에 이전보다 더 집착하게 된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게이브는 어린 여학생과 친한 사이가 되고 점차 이 여학생에게 빠져든다.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는 위기를 겪는 중년들의 이야기다. 이혼을 결심한 이들은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새로운 문제를 경험하며 때로 헤어진 이를 향해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는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쪽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젊은 학생에게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한 남편은 유혹의 목소리 앞에서 갈등한다. 영화는 결혼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좀더 포괄적인 소재를 건드린다. 섹스와 부부관계, 그리고 이성에 관한 판타지 영역까지. 따라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앨런의 영화들에 비해 좀더 심각하고 이성적이며 혼란스럽다.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는 형식면에서 조금 거칠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일관하고 있어 피사체는 자주 흔들리고 불안정하다. 편집도 매끄럽지 않고 맥이 툭툭 끊기며 카메라 시점 역시 혼란스럽다. 때로 카메라는 전지적 시점에서 인물에게 접근하지만, 우디 앨런이라는 개인의 시선이 영화를 통제하기도 한다. 영화 속 캐릭터를 실존인물인 양 인터뷰하는 과정도 이 영화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가까움을 암시한다. 재미있는 건 <우디 알렌의 부부일기>가 감독의 실생활과는 정반대의 결론으로 향한다는 것. 여학생에게 빠져 있던 게이브, 즉 우디 앨런이 연기한 캐릭터는 그녀와의 관계에서 등을 돌린다. 새로운 사랑이라는 가능성이 곧 사라져버릴 신기루 같은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새 소설을 쓰는 일에 골몰한다. 현실에 대한 나름의 자책감 탓일까? “삶은 예술을 모방하지 않아요! 싸구려 TV 프로그램을 모방할 따름이죠.” 도덕적 변명이자, 우디 앨런 자신의 인생관처럼 들린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