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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송가] 핏줄 다른 `이란성 쌍둥이`
2002-01-31

<겨울연가>와 <그 햇살이 나에게>

‘시청자를 바보로 만든다.’ ‘허구한날 사랑타령이다.’ ‘왜 만날 그 얼굴이 그 얼굴일까?’

TV의 여러 장르 중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드라마이다. 일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 중 드라마가 가장 많은 편수를 차지하는 것에 비례해 쏟아지는 비평의 양도 많다. 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만큼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도 좀처럼 줄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수는 느는 추세이다. ‘피플미터’나 ‘픽처 매칭’ 같은 첨단 시청률 조사기법이 도입된 이래 드라마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이 정상을 차지한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점도 많고 새로운 것도 없는 드라마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언젠가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PD는 이를 ‘부담없는 통속성’으로 설명했다. “다음 상황이 뻔히 짐작되는 연출, 2회만 보면 마지막까지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있는 캐릭터, 10분 정도 못 보거나 아예 한두회 놓쳐도 줄거리 쫓아가는 데 어렵지 않은 전개 등 드라마의 상투성은 역설적으로 부담없이 다가설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최근 방송 요일은 다르지만 두편의 드라마가 나란히 방송을 시작했다. 매주 월∼화 밤 10시대에 방송되는 KBS2TV <겨울연가>(연출 윤석호, 극본 윤은경·김은희)와 수∼목 밤 10시대의 MBC <그 햇살이 나에게>(연출 김사현, 극본 김인영). 두편 모두 방송사가 내심 ‘대박’을 기대하고 있는 드라마다. 바깥으로 드러난 두편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한쪽은 소녀 취향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즐겨 다루는 연출자의 취향답게 다분히 복고지향적이다. 주고받는 대사의 아기자기함이나 파격적인 사건보다 화면이 주는 다양한 느낌을 중시한다. 반면 다른 한쪽은 전형적인 ‘석세스 스토리’이다. 작은 어촌 출신의 아가씨가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고, 성격좋고 매력적이고 능력도 있는 현대판 ‘백마 탄 왕자’와 멋진 로맨스도 갖는다. 느낌 좋은 한컷의 그림보다는 아기자기한 사건과 해프닝을 강조한다. 확연히 구분되는 주제이고, 연출자나 작가의 스타일도 다르다.

하지만 두 드라마는 묘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전형적인 스타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두 드라마 주연들이 너무 비슷하다. <겨울연가>의 배용준이나 <그 햇살이 나에게>의 류시원 모두 하이틴 로맨스에서 금방 빠져나온 듯한 캐릭터들이다. 드라마 내용에 맞게 한명은 조금 반항적으로, 다른 쪽은 낙천적인 성격으로 ‘슈거코팅’을 했지만 본질적으로 여자 주인공이 모든 것을 의지하는 완벽한 인물로 등장한다.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마지막에 해결하는 것도 이들 남자 주인공의 몫. 표면상으로는 여자 주인공인 최지우나 김소연과 비슷하거나 적은 배역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흐름의 방향을 쥐고 있는 ‘키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비중은 훨씬 높다.

드라마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남자 주인공에 비해 여자 주인공들은 직업이나 성격과는 상관없이 항상 수동적이다. 모두 남자 주인공이 만든 갈등에 힘들어하거나 그에게서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얻으려 한다. 배용준과 박용하 사이에서 갈등하는 최지우나 류시원을 놓고 유선과 갈등하는 김소연 모두 그녀들의 선택에 따라 드라마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 상대역인 남자 주인공들의 결정에 따라 반응하는 수동적인 모습이 그녀들이 드라마에서 펼치는 역할이다. 이들의 옆에서 드라마의 갈등을 증폭하거나 변조하는 인물들도 유사하다. <겨울연가>의 박솔미나 <그 햇살이 나에게>의 유선 모두 이런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팥쥐’류의 인물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런 특성들이 연출자나 작가, 또는 주연 연기자들의 이전 작품에서 자기복제를 거듭하면서 유지된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직업이나 나이, 배경이 되는 무대의 색을 빼면 드라마들은 비슷한 골조와 디자인을 갖고 있다. 단지 포장과 색채가 조금 다를 뿐이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은 두 드라마의 동질성은 결국 ‘상투성’이란 말로 단정할 수 있다.

뭐, 이런 상투성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뭐라 탓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끔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보다 손맛 담긴 가정식 백반이 그립듯이, 가끔은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그런 인물들을 드라마에서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김재범 I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too.com

▣ 사진설명

1~2. <겨울연가> KBS2 월.화 밤 9시 50분

3. <그 햇살이 나에게> MBC 수.목 밤 9시 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