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들이 있다. 혈혈단신으로 버려진 한 사람이 거친 세상을 뚫고 나가는 이야기만 읽으면, 나는 울컥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가족 누군가를 찾으러 떠났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신나게 노는 이야기를 읽으면, 흐뭇해진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버리고 정의를 위해 뭉치는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묵직한 무언가가 나를 내리누르는 걸 느낀다. 아,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구나. 이것이 인간들의 이야기구나. 이를테면 이야기를 통해 중력을 느끼는 것이다. 이야기가 있어서 저기 하늘 위보다 이 땅이 좋은 것이다. 저 세상에도 이야기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일까.
이야기만 그런 게 아니라 유독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도 있다. 이상하게 첼로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바닥에 찰싹 달라붙는다. 생각이 공상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떠다니다가도, 다른 차원이나 우주에 가 있다가도, 첼로 소리만 들으면 갑자기 땅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고, 머리 위로 지구의 회전이 보이는 것만 같다. 첼로 줄의 묵직한 떨림이 상처를 뒤흔드는 것 같다. 음악을 듣다가도 첼로 소리만 나오면 아련해지고, 먹먹해지고 만다. 나만 그런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소리에 마음이 움직일까.
우리는 대체로 중력을 잊고 산다. 물건을 떨어뜨릴 때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오를 때도, 고층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현기증을 느낄 때도, 우리가 중력의 법칙을 받는 사람들이란 걸, 어쩔 수 없이 떨어지고 마는 사람들이라는 걸 잊고 산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이야기를 읽고, 노래를 듣고, 사람들의 사연을 듣다가 중력을 느낀다. 그럴 땐 비참하기도 하지만 속시원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결국 우리라는 사실, 다른 무엇인가가 될 수 없고, 언젠가 여기에서 사라진다는 사실. 중력을 느낀다는 건 그런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넬의 새 노래 <Holding Onto Gravity>를 듣다가 그런 중력을 느꼈다. 시작 부분, 첼로 소리가 등장할 때부터 마음이 흔들렸고, 드럼이 가세하며 리듬이 빨라지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Holding Onto Gravity>는 넬의 그 어떤 곡보다 소리의 배치가 탁월한 노래였다. 첼로는 바닥으로 스몄고, 피아노는 천천히 걸었고, 드럼과 기타는 앞질러 뛰어나갔다. 세개의 층위가 결합하자 중력이 느껴졌다. 공간이 생겼고, 무게가 생겼다. 노래가 나를 날아가지 못하게 붙들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공기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 같고, 세상 그 모든 중력이 온통 내게 머무는 것 같’다. 날아가고 싶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여기서 그리워하고, 가련해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공기의 무게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이야기와 첼로가 있어서, 비슷한 무게를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래도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