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로 드라마를 읽어보자. 10% 미만의 낮은 시청률에서 점점 치고 올라가 20% 중반을 넘긴 경우는 대개 극본이 탄탄한 복수극이 입소문을 탄 경우다. 시청률이 낮아도 구매력있는 시청층이 확보된 경우는 그들을 겨냥한 광고들이 쏠쏠하게 붙기도 한다. 대박을 친 주말극의 후속 작품은 관성으로 채널을 고정하던 시청층의 덕을 보기도 하고, 처음 시청률에서 반 토막이 난 경우는 드라마가 산으로 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30%, 드물게 40% 고지가 눈앞인 드라마는 분당 시청률이 높거나 화제가 된 장면이 반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추국을 받는 한가인, 인두가 코앞에 놓인 한가인, 곤장을 맞는 한가인, 오랏줄에 묶인 한가인… 등등. 그리고 시청률이 검증된 공식들은 이후 드라마들에 영향을 끼치며 짧은 주기의 트렌드를 만든다. 시청률 외에 제작비나 PPL, 해외 판권 수익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제작환경의 규모 역시 드라마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변수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숫자들을 장악한 통계와 확률의 화신이 있다면? SBS <드라마의 제왕>은 여기서 출발한다. 드라마 제작자인 주인공 앤서니 김(김명민)은 각각의 변수를 통제하고 확률을 계산하는 노련함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함으로 업계의 제왕으로 군림해온 남자다. 드라마 산업의 규모나 시스템에 정통하며 드라마를 성공시키는 비결과 시청률을 치솟게 하는 기술을 자주 입에 올리던 앤서니의 확률게임은 급기야 테이프를 배달하기 위해 퀵서비스 기사가 목숨을 걸게 하고, <우아한 복수>의 보조작가 이고은(정려원)을 속여 비장한 최후를 앞둔 주인공이 오렌지주스 팩을 짜먹는 PPL 신을 쓰게 했다. 결국 순식간에 추락하고 만 앤서니는 고은의 극본 <경성의 아침>으로 드라마판에 다시 뛰어들어 재기를 노린다.
한편 <드라마의 제왕>은 현재의 제작 시스템과 드라마에 개입하는 외부요인들을 언급하고 풍자하는 동시에, 시청률을 견인하기 위한 공식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채널이 돌아가지 않도록 시선을 잡아두는 긴박한 교차편집과 가벼운 뒤통수를 치는 낚시가 매회 규격에 맞춘 듯 반복되고, 업계 관계자들이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극본’이라 칭찬하는 <경성의 아침>이 투자와 편성, 주연 캐스팅까지 해결하며 드래곤 중에 최강, 신족도 마족도 다 이기는 ‘투명 드래곤’화해가던 6회까지는 꽤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드라마란 장르를 조망하고 풍자하는 건 좋은데 드라마의 몇몇 공식을 답습하는 것으로 희화화하거나 환상의 극본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노파심이랄까.
한데 이 드라마, 의외로 인물들이 오해를 풀고 각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대목에선 무척 담백하다. 열등감을 동력으로 지치지도 않고 흉계를 꾸미는 오진완(정만식)을 제외하고, 갈등관계에 있던 인물들은 정보가 갱신되고 상황이 바뀌었다면,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생각과 입장을 조정한다. 출연을 권유하는 고은의 진심에 가장 드라마틱하게 설득되었던 주연배우 강현민(최시원)도 실은 워낙 귀가 얇아 모든 충동질에 드라마틱하게 반응하는 인물이었으니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감화는 없는 셈. 드라마관을 두고 대치하던 앤서니와 고은은 드라마 제작 미션을 수행하면서 각자의 가치관이 보지 못하던 맹점을 보완한다. 이들이 서로의 말을 귀담아듣고 상대를 파악하는 데 충실하다는 증거는 서로의 패턴을 읽고 받아치는 대화나 상대방의 기술을 모방해 허를 찌르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인물들도 데면데면한 첫 만남보다, 두 번째가 그리고 그 이상 마주쳤을 때의 대화가 훨씬 차지다. 낚시질을 불평하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화사하게 웃으며 낚여줘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