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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낙이의 생이 다할 그 날까지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초

“나는 대부분의 하루를 혼자 있는다/그동안 이집은 내가 왕이다/나는 윗집을 향해 크게 짖을 수도 있고/쓰레기통을 뒤질 수도 있지만/하지 않는다/어릴 때는 한 것 같기도 한데/지금은 하지 않는다/이젠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얼마 안 남아서/아주 소중하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6화, ‘열다섯살이에요’ 중에서

사무실에서 이 웹툰을 정주행하다가 아차 싶었다. 집에서 볼걸.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혹여나 옆자리 선배가 눈치챌까 조용히 훌쩍이며 스크롤을 내려야 했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의 주인공은 작가의 반려동물인 열다섯살 푸들 낭낙이와 두달 된 아기 고양이 순대다(연재가 2년간 계속되며 낭낙이는 열일곱, 순대는 두살이 됐다). 초 작가는 그들의 눈빛으로부터, 보드라운 털의 온기로부터 읽어냈던 마음의 소리를 일상적인 에피소드에 담아 풀어냈다. 댓글에 ‘ㅠㅠ’의 행진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은 낭낙이다. 검은 푸들이었던 낭낙이는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기며 회색이 되었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피부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힘을 다해 꼬리를 살랑이며 주인을 맞는 낭낙이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재간이 없다. 반면 순대가 등장하는 장면은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쉴새없이 옹알거리며 화분을 엎고 벌레를 쫓는 아기 고양이 순대의 사랑스러움은 낭낙이의 에피소드를 보며 차분히 가라앉았던 마음을 한결 띄워준다.

미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초 작가가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건, “내 평생 하나뿐인 동생” 낭낙이 때문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걸을 정도로 많이 아팠던 낭낙이를 추억하기 위해 “블로그에 일기쓰듯” 올렸던 글과 그림이 네티즌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네이버 도전만화를 거쳐 화/일요일 웹툰으로 정식 연재되기에 이르렀다. 낭낙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신기한 일도 일어났다. “2년 전엔 낭낙이가 금세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재를 시작하니까 얘가 갑자기 팔팔해졌다. (웃음) 아직 건강한 편이니, 완결까지 정말 오래 걸릴 것 같다.” 어느덧 200화에 임박한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의 연재 여부는 낭낙이의 건강에 달려 있다고 초 작가는 말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낭낙이가 죽기 전까지 계속 그리고 싶다. 하지만 낭낙이가 죽는 모습을 독자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진 않다. 지금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있다. 언젠가 낭낙이가 죽을 것 같이 아프거나 안락사할 때가 됐다고 느낄 때, 만화를 멈출 수 있는 마음의 준비.” 혹시 낭낙이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울어버리는 건 아닐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지만, 하나뿐인 여동생의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얘기하는 초 작가의 모습은 초연해 보였다. 그건 고등학생 때부터 차분하게 죽음에 대비해온 그녀의 마음가짐과도 맞닿아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6개월에 한번씩, 꼬박꼬박 블로그에 유서를 써왔다. 사람은 언제나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낭낙이를 떠나보낼 때도 너무 많이 울어도 안되고 너무 담담하게 보내줘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낭낙이 편을 연재할 때도 독자분들이 지금 내 만화를 보고 울지언정 누군가를 보내줄 때는 편하게 보내주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린다.”

반려동물과 주인은 서로 닮아간다는데, 달라도 너무 다른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 초 작가는 이 작품을 연재하며 비로소 낭낙이와 순대에 대한 마음가짐의 차이를 깨닫게 됐다. “내가 낭낙이를 그릴 때는 쿨톤의 색깔을 쓰고 순대를 그릴 때는 웜톤을 쓰더라. 낭낙이를 대할 때는 보고 싶다, 슬프다는 느낌으로 그리게 되고(낭낙이는 얼마 전부터 부모님과 함께 산다) 순대는 하도 애교쟁이라 재밌는 에피소드를 몰아주게 되나 보다.” 차분한 쿨톤의 강아지와 웜톤의 발랄한 고양이. 어쩐지 역할이 전도된 것 같은 이 두 마리의 ‘가족’을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귀엽게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전언이 끝날 즈음, 인터뷰를 지켜보던 순대가 슬며시 다가와 다리에 얼굴을 비비적댔다. 마음이 한결 화사해졌다.

게임, 만화+지하철 덕후 인증

-최근 가장 주목하는 웹툰은.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의 이현민 작가님 작품인데 진짜 재밌더라. 아직 프롤로그와 1화까지밖에 안 나왔는데 프롤로그 보다가 자지러지고, 1화 보다가 울었다. 너무 재밌어서. 웹툰을 많이 보다보면 프롤로그와 1화까지만 봐도 재미있을지 재미없을지 감이 온다. 이 작품은 대박날거다.

-작업 이외의 시간에는 뭘 하나. =<블레이드 앤 소울>. (웃음) 내가 게임, 만화 덕후다. 어렸을 때부터 콘솔게임부터 온라인게임까지 웬만한 게임은 다 해봤다. 지금 게임회사에 다니며 웹툰을 그리고 있는데,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마감의 조력자(사람, 물건 다 포함). =지하철을 탄다. 내가 지하철 덕후이기도 하다. 9호선 처음 나온 날 시승식에 가서 사진도 찍고 올 정도였다. (웃음) 지하보다는 지상철을 좋아한다. 바깥 풍경 보며 목적지 없이 가다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화되는 느낌이다.